‘진화론’ 이 한마디면 이 책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몇 단어를 더 덧붙인다고 해도, 변이, 자연선택 정도가 될것이다. 누구나 내용을 모르는 것은 아닐테고 갈라파고스의 핀치새는 보기만해도 종의 기원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할까?
나는 그 이유를 요즘 사회에서 찾고 싶다. 우리는 흔히들 사회를 ‘정글’ 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 이유인 즉, 평화, 공평, 나눔, 배려보다는 적자생존, 힘이 규칙을 만들고 힘이 없으면 나가떨어져 사회의 약자로 살아야 하는 현 시대를 반영하는 말일테다. 이에 인간은 동물과는 다르다며, 인권을 만들고 ‘복지’를 내새우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아닐뿐더러, 반대하는 이는 많고, 사회는 아직 ‘정글’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꽤 오래전 부터 사회진화론이 대두되어왔다. 소득하위층은, 사회에 필요한 형질이 덜 발달된 개체, 진화에 뒤떨어진 개체 이므로 하위층이 되는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강력한 생각이 제기된것이다.
이는 아직까지도 현대사회에서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 로써 받아들여지고, 요즘 더욱더 줄세우기, 서열화가 가속되면서 득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초등학생들 까지도, 아파트 평수로 서열을 나누는 시대다. 뜻하지 않게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에 맞물려 이런 사상의 원초점이 되었지만, 정말 시작점의 생각이 이런뜻을 담고 있었을까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진화론이 진화론의 왜곡인지 아닌지 직접 판단을 시도하자는 것이다.
애초에 저자의 목적은 창조론의 안티테제였다. 신께서 모든것을 창조한 단일 개체들의 모임이 자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것이다. 모든 개체는 변이를 하며 이는 자연에 의해 선택받는다. 선택받지 못한 형질은 살아남지 못하고 선택받은 개체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즉 생명이 조물주에 의해 단 하나의 형태로 불어넣어졌다는 견해에 대한 반박인것이다.
더불어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이 혹성이 확고한 중력의 법칙에 의해 회전하는 동안에 그토록 단순한 발단에서 극히 아름답고, 이와같이 가장 경탄할 만한 무한의 형태가 생겨나고, 또한 진화되고 있다는 이 견해속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로 장엄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자세이지, 사회에서 사람을 가르는 편협한 잣대가 아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영원히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