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1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
이 땅의 아름답던 장소들에 대해 너긋한 시선으로 훑어준,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이다.
솔직히 말하건데, 주말에 아무데나 가볼까 하고 가기에는 난감한 오지들이 실려있다. 책 보고 마냥 잘못 따라나서다가 위험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책 서술 사이사이에도 차를 잘못 끌고 갔다가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후진을 했다던 저자의 일화가 실려 있곤 하니, 굳이 첨언이 필요할까. 더는 인생에 후회와 아쉬움이 남지 않거든 그제야 이번 주말에 어디 가볼까 하며 펼치면 될 책이다. 굳이 제목을 다시 달아주면 '다시 태어나고 싶을 때 어디로 가볼까' 정도면 보다 설득력 있는 제목 아닐까.
그리고 강원도의 비중이 매우 높고, 그다음이 경상북도의 비중이 높다. 충청도와 경기도의 눈에 띄는 짧은 분량은 저자의 애정이 덜 닿았거나, 강원도 출신의 여행사 사장이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음이 틀림없다.
17년의 마지막에, 어느 책의 리뷰를 남겨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마냥 오거서 장학금이라는 거대한 생존의 문제에 앞서서, 그래도 한 해 마지막 날 독서의 후기를 남기는건 마치 17년의 종무식과도 같지 않은가. 그래, 올해 그래도 읽은 책 많았구나. 그 마지막에 이 책의 기록을 남겨보는 게 좋겠다. 너가 17년이다.
그렇게 엄선한 후보군도 쟁쟁하다. 저기 수원 도서관 가서 빌렸지만 오거서의 자동 로그아웃에 처음으로 응징당해 통째로 리뷰를 날린 '엔트로피'나, 올해 접한 후 세 번 내리 읽으며 어떻게 이렇게 나와 비슷한 생각을, 보다 압도적으로 조밀하게 설명해냈는지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 '호모 데우스'도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앞에 둔 '군주론' 또한 글의 완성을 어여삐 기다리고 있고, 도서관 다시 열자마자 읽으려 벼르고 있는 '자살론' 또한 있었다.
이 여행지를 소개하는 사진 위주의 간략한 책이 12월의 마지막 날을 차지한 이유는, 어릴적의 광주와 지금의 마산, 그리고 더 오래전의 부산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부산 사람이었다.
아니, 부산 사람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을 때마다 다른 지역의 유년 경험이 나오는데, 어떻게 특정 지역을 말할 수 있을까. 어느 학창 시절은 저기 목포서 계셨고, 또 광주에 계신듯 하며, 더 어린시절엔 부산에서 1시간 30분씩 까악고개인지 까막고개를 걸어 학교를 다니셨다했다. 그리고 더 나이들면서는 잠시 인천에서 체류하셨다 하고, 그렇게 한창 돌고 돌다가 형이 태어난 곳은 포항이고 3년 뒤에 나는 광주에서 태어났으니, 연고지를 따지는게 더 어색할 지경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도 돌아다니시다 보니, 풍광 보는 데에는 도가 트셨나 보다. 하기사 매일 아침 학교를 산을 건너 물을 건너 가셨다니 별말이 필요한가. 내 어릴적 가세가 조금 더 붙으며 이사 온 집에서 나는 참 묘한 풍광과 함께 살게 되었다. 도시화의 경계선에 있는 아파트에 살다 보니, 저 따스운 남쪽 지방인데 불구하고 평야를 거쳐온 한기가 내 방의 북향창에 오밀조밀히 스며드는 것이다. 추워서 창 너머를 째려보면, 그 너머로 아버지가 병풍산이라 부르던 거대한 산자락을 따라 온전히 담긴 사계절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마음이 동해 길을 나서면 계절마다 벚꽃이며 단풍 한창 구경하고는, 집 들어가는길에 나주곰탕 한 그릇 먹고 다시 달구경 나오고. 오죽하면 후일 서울에 올라오게 되었을 때, 공기가 너무 안좋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았겠는가.
집의 조망만으로는 만족 못하셨는지, 이 지역을 고향처럼 아끼셨는지 아버지는 끝임없이 어떤 장소를 찾아다니셨다. 어릴 때의 기억은 항상 어딘가 먼 곳으로 가서 무언가 맛있는걸 먹고 온 것으로 끝난다. 저기 멀찍이 할아버지 묘소에 다녀왔다가 무슨 한식을 맛보고, 예전 친구와 같이 놀러가서는 어디 산자락에서 굴비 정식을 먹고, 또 어느 아침에는 몸 관리해야지 하며 추어탕을 먹으러 나서고...
저자는 76년생이라 한 쪽 날개에 밝혀둔다. 본인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잦아 왠지 훨신 어릴 줄 알았더니, 후하게 쳐주면 작은 삼촌 정도 되는 연배 아닌가.
내 아버지가 고향에 대해 책을 만드셨다면 아마 이런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여행지의 지도, 네비게이션, 추천 숙소, 전화번호. 이런 것들은 다 후대에 필요하고 후대에 나온 것들이다. 아버지는 발품 팔아 가셨으니, 그리고 그 풍광을 다 눈에 담고 사진으로만 남겨 두었으니 저런 정보들은 나열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는 말하셨겠지.
아들아, 어릴 때 갔던 거기 기억하니? 그래 백양사. 아니면 저번에 간 그 산도 다시 가볼만 하더구나. 거기는 산이 깊어 금방 해가 떨어지니, 조금 일직 출발하렴. 그 때는 버스를 타고 갔었는데. 내려오는 중턱에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가게가 있는데, 그렇게 맛있더구나. 아, 그 옆에 있는 절도 괜찮았는데. 저번에 너희 엄마랑 같이 갔다오지 않았었니.
여행지의 소개로는 다소 불친절할 수도 있다. 그 흔한 네이버 지도상의 위치도 하나 안찍어주고, 관련하여 물어볼만한 전화번호 또한 여간 보이지가 않는다. 다만 저자의 마음에 남은 사진 한 두장과, 추천하는 일정이 간략히 담겨 있고, 기억에 남는 음식과 그 사람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대로, 균형감도 떨어진다. 아니 강원도가 왜 이렇게 많아. 저기 전라도도 괜찮고, 경상남도도 볼거 많고. 읽다보면 강원도는 또 유독 오지 소개가 많다. 저 오지를 왜 저렇게 애착을 가지고 소개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아버지가 고향을 이야기하시거든, 꼭 같은 식이다. 다닌 곳은 그리 넓고 많으시면서도 꼭 한 두 군데 애착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지리산 가서 친구를 사귄일이며, 거기서만 파는 벌꿀을 사온 일이며. 아직도 마산에 있는 집에 가거든 그 때 친구에게 선물 받은 담금주를 거실에 보관하고 계신다. 정작 한모금도 안드시면서는. 책에 나오는 강원도의 막장이야기며, 어느 자신만 아는 듯 자랑하는 음식점 이야기를 들으며 겹치는 모습이 보일 수 밖에.
저번에 아버지를 뵈었을 때, 한창 강원도에서 친구가 꼬득이고 있다며 불평하셨다. 광주서 마산 넘어온지도 별로 안되었는데, 자꾸 공기 좋은 강원도에 터 마련해 둘테니 넘어오라고 친구가 꼬득인다는 것이다. 일전 광주서 마산으로 가실 때도, 아버지는 한참을 고민하셨다. 그리고 내게도 물론 큰 고민이었다. 광주와 마산은 아무래도 거리가 있으니까. 고향이란 무엇이라 해야하나. 방학 즈음 내려가 친구들 만나고, 어릴 때 보던 친구들 만나고 들이쉬던 공기 내음 찾아 나설 수 없다면 과연 마냥 좋아해야할까. 그 때 즈음에는 아버지 고향이 경상도며는 굳이 타지서 맘 고생 그만하셔도 되지 않겠냐 말씀드렸는데, 그 어린 아들의 짧은 생각에도 아버지는 감사하다 말씀하시며 고향에 보다 가까이 가셨다.
지금 돌이켜보건데, 사실 친구들은 굳이 보려면 대전가서도 보고, 서울서도 만날 수 있더라.
다만 내가 어릴적 고향이라 느끼고 숨쉬던 공간이 사실은 아버지가 오랜시간 선별해놓은 장소며 공기내음이며 풍광이었음에, 서울의 작은 자취방에서 절절히 느끼고 있다. 마산이건 강원도건 광주건, 그 어느 지역이던간에 아버지와 같이 먹을 것도 찾아나서고, 단풍도 보러 나가거든 내가 고향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것이 아닐까.
저자의 강원도 사랑 또한, 사실 아버지의 고향임에, 아버지의 애정이 더 어려있는 곳이기에 더 세세히 드러난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 가 왠 말인가. 사실 아버지와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것을.
18년에는 그 분의 고향을 더 만나러, 나의 고향으로 찾아나서야지.
이번의 담론은, 짧게 끝나버렸다. '고향론' 정도면 공감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