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를 읽고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 때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거의 공감하지 못하였고 쉽게 풀어서 전달할 수 있는 내용들을 너무 어렵게 말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내용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냥 ‘읽어’ 보았다는 것에 초점을 두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과학고를 준비하던 중학생이었고 합리성과 객관성을 중시하였고 돌려 말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였다. 아마 문학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읽을 때에는 전과는 달랐다.
주홍글씨의 내용은 현대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금지된 사랑과 불륜이다. 분명 식상할 수 있는 주제임에도 나한테는 이 소설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느껴졌을까? 우선은, 보수적인 청교도 사회라는 시간적 배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서구 사회라고 한다면 과거 동아시아 사회보다 덜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조선 시대 못지않은 억압되고 도덕성이 강조되는 사회이었다. 물론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에게 지나치게 그 기준이 가혹하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사랑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등장인물 설정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나에게 다가왔었다. 왜냐하면 하나 같이 시대적 상황 때문에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하였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인물들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일까? 평생 주홍 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헤스터 프린? 태어나자마자 악마의 자식, 꼬마 마녀라는 별명이 붙었던 펄? 사회적으로는 존경받는 목사이지만 속으로는 헤스터와의 불륜으로 인해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였던 딤즈데일 목사? 학식 높은 의사였지만 복수에 눈이 멀었던 칠링워드?
헤스터 프린과 펄은 결국에는 주홍 글씨라는 사회적 압박을 극복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외국에서 살던 늙은 헤스터 프린은 돌아와서 다시 주홍글씨를 가슴에 단다. 그 말이 무슨 뜻일까? 더 이상 프린에게 주홍 글씨가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딤즈데일 목사의 유일한 죄는 헤스터를 사랑한 것이다. 그는 매번 설교를 할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들에게 설교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결국 마지막 처형대에서 자신의 죄책감을 모두 벗어내고 생을 마감한다. 그 또한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한 것이다.
개인적 견해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로저 칠링워드라고 생각한다. 그는 결코 자신의 복수심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그는 자신의 학식을 남을 위하여 사용하고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여성과 결혼하여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복수심에 눈이 멀어 딤즈데일 곁에서 그를 죽게 만드는 것에만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그 결과 그 자신도 더욱 비참해져 갔다. 딤즈데일 목사가 죽을 때에도 그가 자신을 벗어났다고 분노하였다. 아마 작가의 의도들 중 하나는 복수심을 갖지 말자는 것 또한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이 고전 명작이라고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탁월한 심리 묘사일 것이라 생각한다. 문장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각 등장인물이 어떤 심정인지 공감이 가고 이해가 잘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현대 사회에 비추어 이 소설을 읽어도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사소한 잘못으로 인하여 평생을 주홍 글씨를 달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대중 매체에서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런 사람들이 괴로움을 호소하다가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헤스터라는 여인을 통하여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가 주홍 글씨를 가진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헤스터 프린을 한 번만 더 생각해 본다면 그로 인한 피해자를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