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인터넷 뉴스에는 온갖 강력 범죄에 대한 기사들로 가득하다. 살인, 강도, 성폭행을 저지르고 이를 무덤덤하게 생각하는 범죄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혹여나 출소하더라도 알아볼 수 있게 얼굴에 문신이라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범죄자가 얼마나 사는지 조회해본 사람이 많은 것으로 보면 이런 생각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또한 현대 사회의 것만이 아니기도 하다. 주인공 헤스터 프린의 '주홍글자'는, 당시 엄격한 청교도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강력 범죄인 외도를 저지른 그녀를 식별할 수 있도록 불타는 빨간색의 실로 새겨 넣은 1800년대 미국 버전 전자발찌인 것이다. 따라서 단편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녀는 전자발찌를 찬 강력 범죄자다. 게다가 공범은 마을에서 촉망받으며 감동적인 연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젊은 딤스데일 목사다. 감동적인 노래를 불러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젊고 잘생긴 가수가, 강력 범죄의 공범자였고 그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오랫동안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어떨까? 인터넷 뉴스 1면의 기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호손은 다른 단편들에서 보여준 청교도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주홍글자'에서도 견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헤스터 프린과 딤스데일 목사는 오히려 호의적인 시각에서 서술된다. 이 소설이 얼마나 파격적인 소설인지, 쓰여진 당시에는 얼마나 더 파격적인 소설이었을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인간과 사회의 심리 묘사에 탁월한 호손답게, <주홍글자>는 다양한 층위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가장 부각되는 문제는 '죄'의 본질과 판단에 관한 것이다. 간통은 죄인가? 간통죄가 폐지된 오늘날에도 간통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간통으로 인해 헤스터 프린이 받은 형은 정당한가?호손은 당시의 엄격한 청교도 사회를 비판하면서 부당한 형벌을 선한 본성으로 이겨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죄는 사회에 의해 판단되지만 사람 본성의 선함과 악함은 내재적이고, 본성이 선한 사람도 사회의 판단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호손의 글에 깔린 전제인 것이다. 이는 <루시퍼 이펙트>에서 읽었던 1980년대 스탠포드 감옥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신체와 정신 모두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던 20대 청년들이 2주간 죄수와 교도관으로 역할을 나누어 생활하자 그들 사이에서 죄수에 대한 신체적, 언어적, 성적 학대가 벌어지고, 죄수들의 반항과 이상행동이 나타나게 된 이 실험을 통해, 저자이자 실험 진행자였던 필립 짐바르도 박사는 '인간의 선악은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후에 박사는 법정에서 상황에 의해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된 범죄자들을 다수 변호해주게 된다. 이처럼 죄도 사회에 의해 형성되지만, 인간의 본성에 주변 상황이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권리와 전제로 범죄자들을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며, 죄인에 대해서만 심판할 것이 아니라 죄를 판단하는 사회와 법의 유연성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이다. 청교도 사회의 엄격한 규율은 풀렸지만, 아직도 이 사회는 동성애나 청소년 범죄, 낙태 등 다양한 부분에서 인간의 죄에 대한 정의를 확립하느라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진행중이다. 딤스데일 목사가 죄책감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눈을 감고, 헤스터 프린이 자신에게 새겨진 'A'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어느정도의 유연성과 엄격함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인간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이해가 선행된 후에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