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읽었던 스무살 철학에 언급되어있었던 책이다. 극을 달리는 시련속에 내던져진 정신의학의사가 자신과 주변을 관찰하며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의학적 치료방법을 개발해내게 된 일종의 자서전이다.
그가 로고테라피 기법으로 소개한 역설의도나 예기불안이란 개념은 내가 사춘기때 나를 다루기 위해 썼던 방법과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역시 내가 요즘 이고다니는 생각대로, 위대한 학문이란, 누구나 알고있지만 누구도 글로적어내지 못하는 경험을 논리적으로 적어내는 것이라는 내 의견에 힘을 받았다.
쥐에서 주인공의 고통과 행운을 현실적인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면, 이 책에선 시련에 의미를 부여하여 살아낸 일인을 만날 수 있다.
요즘 나치정권하에서 고통을 그린 책들을 조금 읽어봤는데, 저자들은 정말 행운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글에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왠지, 그들은 고통의 끝을 보지 못한채, 우리에게 주제넘게 그 고통을 그리려든다는 생각때문 인듯하다. 하지만 아우슈비츠에서 고통의 끝을 본다는 것은 현실의 시련이 끝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것이다. 뭐,,, 이상 정리되지 않은 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