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적인 분야에 일가견이 있다고 알려진 진중권 현 동양대학교 교수가 그 동안 집필한 짧은 에세이들을 주제에 맞게 재구성하여 묶은 에세이집이다. 그 테마는 주로 예술과 정치, 평론, 한국미, 성과 육체, 죽음 등을 결합하여 구성되었는데, 300 페이지 가량의 길지 않은 책에 예술의 여러 시기와 여러 형태를 다양한 테마 내에서 접목시킴으로써 이미 알고 있던 작품에 대해서는 한 번 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새롭게 알게 된 작품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배경설명과 더불어 그 시대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함께 진중권 자신 혹은 그 시대 다른 비평가가 생각한 다른 의미론적 접근 또한 설명되어 있어 예술에 있어서 얕지만 넓은 지식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첫 번째로 죽음과 예술 테마에 있던 내용이였다. 그는 사람들은,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면서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끌리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예로, 그는 사람들이 잔인한 장면을 보면 징그러워하며 손으로 눈을 가리지만, 순간순간 그 장면이 끝나기 전까지 손가락 사이로 그 것을 들여다보곤 하는 것을 들었다.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기도 하고 평소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은 나로써는 실제로 책을 덮고 그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정도로 충격적인 인상이 남는 대목이었다.
두 번째로는 제일 좋아하는 미술 분야인 팝아트에 대한 여러 평가가 실린 대목을 들 수 있다. 이는 우선 분변과 예술이라는 테마에서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을 들었던 부분이 있는데, 사람들은 죽음에 관심이 있듯이 분변과 같은 본능적으로 더러워하는 것에서도 은근한 흥미를 가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런 것이 이 '샘'이라는 변기에 불과한 작품이 유명해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또한 박물관의 예술에서의 역할을 다룬 부분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다. '샘'이나 앤디 워홀의 캠밸 스프 캔, 로이 리히텐슈타인들의 만화와 같은 그림 등의 예술이, 박물관 안의 작품이기를 거부하고 '생활'로서 존재하고자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특성 때문에 원래 존재했던 장소를 떠나 단절된 박물관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부분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사진의 등장 이후의 회화의 흐름을 설명한 부분이었다. 있는 그대로를 섬세히 표현해주는 역할을 사진이 대신하게 되자, 회화는 오히려 사진이 할 수 없는 있는 그대로를 변형시킴으로써 그 존재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피카소의 큐비즘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오히려 한 평면에 여러 시점을 담아 냄으로써 사진을 뛰어넘은 영상의 성질을 가지기도 하게 된다. 원래 있던 성질을 부인하고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된 회화가 오히려 그 발전을 이뤄냈다는 것은 예술사에서도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겠지만 살아가는 생활에 있어서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해볼 수 있었다.
한 학기를 바쁘게 살고 그 마무리로써 이 미학 에세이를 접하게 된 것은 나에게 있어서 오랜만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였던 것 같다. 현실의 실용적인 공부나 살아가는 문제 속에서 바쁘다가 이렇게 예술적인 분야로 관심을 돌리게 되면서, 어떻게 방학을 보내야 할 지나 어떤 분야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관심을 배분하며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삼학년이 되고 취업이나 고시 준비, 자격증 등 너무 현실적인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가끔은 이렇게 예술이나 내가 관심있어하는 천체학 등을 공부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