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뭘까?”
이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릴 대한민국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나 그 질문의 대상이 아이를 둔 아버지, 또는 어머니라면 말이다. 2003년 처음 TV에 등장해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애니메이션 한류’를 일으키고 있으며, 어린이들의 대통령으로 군림하며 ‘뽀통령’이라는 수식어까지 가지고 있는 이 캐릭터의 이름은 바로 뽀로로다. 그러나 이처럼 전 국민적, 아니 전 세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캐릭터가 하루아침에 그냥 생겨났을 리 없다. 그렇다면 이 어마어마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장본인은 과연 누구일까? 놀랍게도 뽀로로를 만든 사람은 기존에 다른 작품을 성공시킨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식으로 애니메이션을 공부해 본 적도 없고, 심지어 수년간 애니메이션과는 관련이 없는 분야인 광고계에 몸담고 있던 현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 최종일 대표다.
내가 꽤 오래전부터 꾸고 있던 꿈은 바로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었다. 미술이라든지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고 지금 대학에서의 전공 역시 이와는 무관한 것이긴 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이 일을 꿈꿔왔고 지금도 가장 진심으로 좋아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의심 하지 않고 이 길이 나의 길임을 굳게 믿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주변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하긴 했다. 나 스스로도 꿈이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혹자는 이런 나를 어리석게 볼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저자인 최종일 대표도 사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저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학생들처럼 초, 중,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입학하고, 그 당시 유망 직종이라고 하던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나름 안정된 직장이 보장된 삶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딱 한가지 다른 것이 있었다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 엄청난 불모지를 직접 개척하기 위해 보장된 출세의 길을 스스로 박차고 나왔다는 점이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당시도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긴 했지만 그게 아직 너무나 막연했던 탓인지, 또는 너무 어렸던 탓인지는 몰라도 책에 대해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그 분이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혹은 미래의 애니메이션계 종사자로서 당연히 읽어야 할 책이라고 약간의 의무감에서 책을 읽었기 때문이 아니었었나 싶다.
그러나 다소 버거웠던 고등학교 생활, 지금의 대학교 생활을 지나면서 읽은 이 책은 그때마다 새로운 느낌과 일종의 교훈을 가져다주었다. 그 중에서 최근 과제를 하느라 이 책을 3번째 읽었을 때의 감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나는 단순히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좋아.' 또는 '우리나라는 아직 애니메이션 불모지기 때문에 그냥 편성이나 배급 일만 해도 좋을 것 같아.'등의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진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애니메이터나 디렉터들의 하는 것처럼 관련 인프라가 탄탄한 일본이나 미국으로 건너가서 일을 할지, 다소 열악하더라고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산업에 투신할 것인지도 쉽사리 생각해보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은 '창의성'을 요구하는 산업인데, 스스로가 천성이 너무 틀에 박히고 계획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었다.
그러나 책에서 최종일 대표는 애니메이션이야말로 가장 '계획적이고, 준비가 철저히 필요한' 산업이라 말한다.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이 크리에이티브가 어느날 갑자기 머릿속에서 확 튀어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기획한 것이 화면으로,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통해 한치의 가감없이 보여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어떤 허점과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분야라고 했다. 그가 때로 '독일병정'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작업에 깐깐하게 구는 이유다. 이 말을 듣고 무엇엔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다소 원칙주의자적이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이 애니메이션을 하는데 걸림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최고의 성공을 이루어낸 최종일 대표도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가? '아, 나도 진짜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었음은 물론이다. 이와 더불어 애니메이션 산업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있어야 할 위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단순히 해외의 유수한 애니메이션들을 배급하고 번역하는 일만으로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평소에도 '누구를 위해 공부하나', '누구를 위해 일하나' 라는 질문을 항상 가지고 사는 나로서는 언젠가 젊은 날의 최종일처럼 회사 규모나 직업의 유망성만을 보고 달려왔다가 후회할 가능성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요즈음 TV를 켜서 애니메이션 채널을 볼 때면 뿌듯함을 많이 느끼곤 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일본, 또는 미국 만화 일색이던
채널이 더욱더 다양해진 것은 물론, 다수의 우리나라 토종 애니메이션으로 채워지고 있고 퀄리티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늘었기 때문이다. 뽀로로와 타요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창작 애니메이션의 신화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감히 말해보고 싶다. 가까운 미래에는 나도 내 전공과 취미를 살려 어린이들에게 교육적인 콘텐츠와 재미를 모두 담은 국산 애니메이션 기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또 어떤 새로운 깨달음으로 나를 놀라게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내가 애니메이션을 하는 데 있어 영원한 지침서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