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눈을 뗄 수 없이 술술 읽히는 책을 만났다. 한강 작가는 '소년은 온다'라는 책으로 먼저 접했는데 처음부터 읽었을 때부터 강력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문체와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표현들 모두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채식주의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한강'스러운 소설이었다. 채식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깊게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중 정상적인 사람은 없다. 첫 장에서 정상적이라고 여겼던 사람들도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들조차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책 속에 작가가 담고자 했던 주제가 여러 가지였던 듯도 싶지만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정상인으로서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 '정상'이라는 것은 지독히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다수에게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 진리가 되고 체계가 되고 규범이 된다. 소수의 의견, 소수의 방식은 필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사회이다.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가질 수 없는 이상 언제나 사회는 소수의 의견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채택한다. '정상'이라는 개념도 결국에는 다수가 일반적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틀 안에서 결정된 것일테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거나 꿈을 이유로 채식만을 고집하는 영혜의 모습,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예술을 추구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형부의 행동, 등장인물들 중 가장 정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겉으로만 그런 모습일 뿐 속으로는 문드러지고 있던 인혜의 삶. 이 외에도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인물들 중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상적인 삶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작가가 인간을 너무 비관적으로 그려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상인으로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라는 말처럼 '정상인'이 되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타인에게 나의 기준을 대입시키는 폭력을 우리는 모두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있다. 그렇게 다수가 정한 틀에 나를 끼워맞추어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평범하다는 것, 정상적이라는 것, 일반적이라는 것, 이 모든 말들 속에 '나'는 없는데 말이다.
영혜가 마지막에 던진 말이 있다.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이 문장을 읽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게, 왜 내 마음대로 죽으면 안되는 걸까?내 삶이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라면 내가 내 맘대로 죽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담긴 위험한 생각을 반박해줄 의견은 수없이 많겠지만, 어쩌면 너무 과한 발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그런 의문이 들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라고. 그리고 나는 나일 뿐이라고. 지금까지 나는 인혜같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힘들지 않은 척, 괜찮은 삶을 사는 척. 나조차도 그렇다고 믿어버릴 만큼 나는 나에게 억압적이고 엄했다. 냄새가 나서 들여다 볼 때는 이미 곪고 곪아 터져버린 후다. 이렇듯 우리는 맞지 않는 틀에 억지로 들어가려고 끼어 자국나고 상처났던 마음을 제대로 마주하고 덧나지 않게 치료해주어야 한다. 작가가 의도한 메세지가 과연 이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