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는 철학 학사 학위를 소지한 경영 컨설팅 전문가가 쓴 철학 대중서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출판된 지 몇 개월 만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우리 학교 도서관에도 이미 여러 권이 비치되어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야마구치 슈가 다양한 분과 학문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50명의 사상가 및 학자들을 단순하게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묶은 뒤 지나칠 정도로 간결하게 소개한다는 점, 기존의 철학 입문서와는 다른 편집 및 구성 방식이 오히려 철학 고유의 문제의식에 대한 협소한 이해로 독자들을 이끌 수 있다는 점은 비판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러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적 수준이 높지 않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충분히 따져봐야 한다는 결론을 낳는다. 따라서 본 리뷰의 목적은 베스트셀러 인문학 대중서인 이 책의 얕은 지적 수준 및 의심할 만한 구성 방식에 의문을 품는 것뿐만 아니라, 이 책을 둘러싼 대중의 의식 형성의 과정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다.
야마구치 슈가 이 책을 통해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다른 학문과 구분되는 고유한 영역을 소유한 철학이 아니다. 즉, 이 책은 “철학” 자체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 정의에 대한 혼동을 불러일으키고, 철학을 “무기”라고 소개함으로써 철학을 편협한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먼저, 야마구치는 프롤로그인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에서 철학 교육의 중요성을 논할 때 “철학”이라는 단어와 “교양”이라는 단어를 동의어로 상정한다. 그러나 철학과 교양은 다르다. 분과 학문의 시대인 오늘날, 교양의 범위는 철학에 국한되지 않고 문학과 사학, 과학 등으로 뻗어나간다. 영미문화권에서도 교양의 번역어는 “philosophy”가 아닌 “liberal arts"로, "philosophy”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구치는 철학과 교양의 관계를 고찰하지 않는다. 또, 야마구치는 철학의 고유성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논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야마구치는 프롤로그에서 철학을 배워야 하는 네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철학을 통해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하는 법, “비판적 사고의 핵심”, “어젠다를 정하”는 법,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철학 교육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은 사실 철학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공학(Computer Science)에서도 필요한 언어 및 조건을 파악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시되며, 학생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프로그래밍 기술을 연마한다. 철학이 가르치는 통찰은 컴퓨터공학이 가르치는 그것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야마구치는 입문서의 저자로서 짚고 넘어가야하는, 근본적인 학문의 고유성 측면을 확실하게 다루지 않는다.
둘째로, 철학을 무기라고 서사하는 야마구치의 태도는, 철학의 가치를 경쟁적인 분야에 한정시키는 오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인 “무기가 되는 철학”은 철학 교육의 문제점과 과제, 본문의 구성 방식에 대해 논의하고 있고, 2부인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50가지 철학·사상”은 야마구치 본인이 임의로 선정한 철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과학자 등 50명을 다루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야마구치가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 “전투력,” “극대화”와 같은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야마구치가 철학 교육의 필요성을 논할 때, 경쟁적인 경제 및 경영 논리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무기는 나를 지키기 위해 사용되든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사용되든 나와 타자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상정하는 개념이다. 전투력 또한 전투라는 경쟁적 상황을 전제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무기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한편, 극대화는 경제학에서 개인과 기업의 본질적인 목적을 이윤 극대화 및 효용 극대화로 규정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와 같은 제목들은 철학을 경쟁적인 사회 속에서의 필수적인 생존 전략으로서 파악하게끔 독자들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철학은 생존 아이템이 될 필요가 없다. 야마구치가 철학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고 언급한 “비판적 사고”는 사고의 형식 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야마구치의 제목 구성 방식은 스스로가 데리다를 소개할 때 구시대적인 사고관이라고 비판한 이항대립의 구조에 빠져든다. 철학을 무기라고 전제하는 야마구치의 태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를 경쟁적인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철학의 가치를 눈에 보이는 효용의 창출로 제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 책의 편집 및 구성 방식 또한 야마구치가 경영학의 시선으로 철학을 재단함으로써 철학을 파편화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이러한 방식에 녹아 있는 그의 선입견이 대중의 선입견을 고착화하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끔 만든다. 먼저, 이 책은 시간 순서에 따라 사상가들을 나열하는 등의 전통적인 구성 방식을 따르는 대신에 “사람,” “조직,” “사회,” “사고”라는 네 가지 개념들을 토대로 목차를 구성했다. 그러나 야마구치의 목차는 책에 등장하는 사상가 및 학자들을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을 정도로 협소하다. 예를 들어, 야마구치가 “사회”를 다루는 3장에서 소개한 카를 마르크스는, 사회를 이야기하기 위해 3장의 부제인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질문만 고민한 것이 아니라, 1장의 부제인 “왜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까?”, 2장의 부제인 “왜 이 조직은 바뀌지 않을까?”, 4장의 부제인 “어떻게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를 종합적으로 생각했다. 이는 1장에 등장하는 니체, 아리스토텔레스, 2장에 등장하는 밀, 베버, 3장에 등장하는 홉스, 루소, 4장에 등장하는 보부아르, 푸코, 보드리야르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사항이다. 즉, 야마구치의 목차는 사상가 및 학자들을 적절하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론 및 사고실험들을 매우 협소한 것으로 축약시켜버린다. 그런데도 야마구치는 자신이 임의로 정한 개념들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들을 고찰하지는 않는다.
구성 방식의 또 다른 문제는, 앞선 논의가 암시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각 사상가 및 학자들에게 주어진 면이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야마구치는 방대한 철학사를 “유용성을 토대로 편집”함으로써 “극히 평범한 사람이 ‘더욱 나은 삶’을 살고 ‘더 좋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공헌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야마구치는 우리가 각 철학자 및 사상가들이 업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프로세스” 와 “아웃풋”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고대의 철학자가 고안해 낸 “아웃풋”이 쓸모가 없다고 할지라도, 그가 이러한 아웃풋을 얻게 된 과정인 “프로세스”를 통해서 배울 것을 찾아내는 것이 철학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면의 제약은 프로세스나 아웃풋을 따지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야마구치는 책의 50면부터 329면까지, 서로 다른 장을 구분하기 위해 할애된 6면을 제외하면 274면으로 50명의 철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및 과학자를 다뤘다. 즉, 각 학자에게 할당된 면은 평균 5.48면인데, 이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저명하고 영향력 있는 학자들의 핵심 사상 및 논변을 교과서처럼 간추려서 제시하기에도 버거운 제약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철학자의 “프로세스”를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실제로 책의 내용은 대부분 학자의 상황을 간추려서 제시하고 그가 세운 업적, 즉 아웃풋을 소개하는 데 그치고 만다. 따라서 독자들은 야마구치가 고안해 낸 철학 교육의 과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철학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로 이를 깨우쳤다고 생각하는 지적 오류의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
또한, 야마구치가 책에서 다룬 50명의 사상가 및 학자 중에 동양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그가 서구중심주의에 빠져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야마구치는 50명의 서양 사상가들을 다루는 동안 과거의 철학자인 장자나 현대의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 등 동양 사상가들을 예시로만 사용한다. 한편, 동아시아 문화권의 저자가, 매우 방대하고 깊은 학문인 “철학”을 주제로 50명의 사상가를 언급하는 동안 동양 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공자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의아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공자를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동양인 저자가 반드시 공자를 언급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내가 성균관에서 공부함으로써 얻은 선입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다. 야마구치 또한 “지나치게 핵심적인 철학 사상에만 치중하면 이익보다 폐해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언급하면서도 “철학이 중심이지만 그 외의 영역도 함께 다루었다”며 철학이 이 책의 주요 주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양철학의 핵심 인물이자 “생에의 의지”라는 독창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인간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 공자의 사상이 다뤄지지 않는 반면, 분과 학문으로서의 철학과는 거리가 있는 심리학, 사회학 분야의 서양 연구자들이 다뤄졌다는 것은, 책의 주제가 엄밀히 철학을 향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결론은 야마구치가 무의식적으로 서양철학을 동양철학보다 우월한 것으로 상정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 개인의 저의에 대한 의심보다, 그의 책이 독자들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서양철학 및 사상의 우월함에 대한 선입견을 고착시키고, 대중으로 하여금 동양철학 및 사상을 열등하고 부족하며 실용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바라보도록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야마구치 슈는 프롤로그에서 철학의 효과 중 하나로 비판적 사고의 증진을 언급했지만, 얄궂게도 그의 저서는 교양이 있는 전문가라고 해서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예시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문제적인 제목 선정과 편집 및 구성 방식 때문에 독자들의 의식 속에서 철학을 축소시키고, 이를 이분법적 경쟁을 상정하는 경제 논리에 종속시키고, 또 동양 사상에 대한 편견을 고착시킬 수 있는 위험한 가능성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알라딘 인문학 분야에서 6월 베스트셀러 10위 및 7월 현재 베스트셀러 8위를 기록했고, 교보문고 인터넷 광고에 따르면 현재까지 15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따라서 인문학도로서 내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범위는 넓어진다. 이는 철학적 사고가 대중적으로 무시 받는 상황이라는 전통적인 문제에서부터, 철학적 문제들이 지나치게 간소화되고 축소된 상태로 배포되어 그 고유한 가치가 훼손되고 다른 학문에 종속되는 현대적인 문제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철학에 관련된 저서를 읽고 문제를 얻어가는 일이, 오늘처럼 아이러니하고 씁쓸하게 느껴지는 날은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