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자키가 「치인의 사랑」을 연재하던 시기에 일본은 서구 문화가 물밀 듯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재즈나 댄스와 같은 새로운 문화와 세태가 일본을 휩쓸었다. 더불어 생활양식의 서구화를 통해 서구 문화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처음 작품을 읽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의 이해를 통해 「치인의 사랑」을 해석하려 했을 때 분명 작가인 다니자키가 당시 사회를 꿰뚫어 보고 비판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 말은 즉 일본에서 많은 사상과 서양문화가 보편화 되어가던 시기에 작가는 여러 사상에 물든 일본인들의 뒤틀린 자아를 「치인의 사랑」 속 인물들로 그리려 했다고 생각했다. 예로서 작품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서양에 대한 조지의 동경을 들 수 있다. 조지가 처음 나오미에게 매력을 느낀 이유는 나오미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서구적인 느낌이었다. 또한, 둘의 만남이 발전해 조지가 나오미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조지는 나오미를 서구적인 미인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조지의 이러한 서양을 향한 동경은 사교춤을 가르치는 러시아인 부인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하지만 과연 작가는 「치인의 사랑」에서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서양문화에 대해 무분별한 동경을 가진 피폐해지는 당대의 사람들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내가 느낀 바는 그렇지 않다.
다니자키의 「치인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비판의 의도를 발생시키는 데 필요한 투쟁이 없다. 작품 속에서 투쟁의 대상이 되는 유일한 요소는 아름다운 여성에 굴복하지 않으려 하는 조지의 내적 갈등이다. 하지만 다니자키는 이마저도 작품 속에서 나오미를 향한 조지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보여준다. 다니자키는 데뷔작 「문신」부터 75세에 발표한 「미친 노인의 일기」까지 장장 오십 오년 동안 오로지 여자의 흰 살갗과 발이 가져다주는 희열만을 그린 작가다. 다니자키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와 미는 철저하게 현세적이다. 또한 다니자키는 여성에게 예속되는 성도착적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를 즐겼으며 탐미주의의 작가로서 여성의 발에 집착했다고 잘 알려져 있다. 그러한 다니자키의 소설의 특징은 「치인의 사랑」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치인의 사랑」은 나오미라는 서양식 이름의 어린 여자에게 농락을 당하면서도 그 생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조지의 기이한 사랑을 그렸다. 이러한 「치인의 사랑」에서 작가는 조지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미’를 표현했다. 바로 나오미의 육체적, 성적인 매력이다. 이러한 미는 작품 속 조지가 어찌할 방도도 없이 정복되어 버리는 강력한 힘으로서 작용하고 마치 여체를 숭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다니자키는 소설 전체를 걸쳐 이러한 나오미의 ‘미’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한다. 이처럼 다니자키는 「치인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미의식을 계속해서 그려낸다. 이는 다니자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능의 표출이며 사상이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작품을 읽었을 때 작가가 표면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듯 보였던 생각은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작가가 작품 속에서 다소 표면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끌어온 것이 작가 자신의 독특한 미의식을 그려내기 위한 하나의 포장 수단이었다고 생각했다. 다니자키가 작품 속에서 그려 낸 인간의 사랑에 대한 하나의 사상은 대중들에게 병적이고 독특하게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다니자키는 이러한 ‘불안 요소를 피하기 위한 장치로서 소설의 표면에 사회적 문제의식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라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실제로 「치인의 사랑」은 당시 검열 당국의 비난으로 인해 게재가 중지되었다가 다른 잡지에 나머지 부분이 게재되어 완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여성과 가족을 바라보는 다니자키의 시각은 일반적인 현대인의 시각에서 이해하기에 매우 파격적이고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분은 다니자키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사랑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치인의 사랑」을 통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다니자키가 자신의 본능을 작품 속 인물을 통해 독특하게 표출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