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이라는 생태학자의 이름과 그녀의 대표 저작 <침묵의 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교과서, 문제지 지문 등으로 빈번히 다뤄질 정도로 인지도가 있지만, 직접 책을 읽어보지 않는 이상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이런 내용의 책이 있구나.' 하며 넘어가지 않을까. DDT 살충제가 유해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떻게, 얼마나 유해하며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이 책을 꼭 직접 읽어봐야 한다.
1) 사회에 불편한 진실을 던지다.
<침묵의 봄>은 단순히 환경 문제를 다루는 책 한 권이 아니다. 과학 지식이 없는 시민부터 심지어는 과학자 본인들까지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에의 전적인 의지, 나아가서는 과학에 대한 맹신으로 물들어있던 당대 사회에 불편한 진실을 던져 파문을 불러일으킨 놀라운 변화의 원동력이었다. 책을 읽으면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 충격적인 진실로 인한 분노 뿐 아니라, 시민 행동과 그에 따른 사회/정치적 변화가 겨우 오늘날의 기준과 화학 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확립해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관념에 대한 안티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절대다수를 반대편으로 돌리는 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슨은 문제제기에서 끝내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그 대상 중 다수가 과학에 대한 이해도가 비교적 낮은 일반인이었다는 점이 의미깊다. 전문가가 비전문가를 독자 수준으로 설정해 글을 쉽게 풀어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원인과 과정을 설명하려다 보니 과학적 원리에 대한 내용도 있었는데, 레이첼 카슨이 정말 과학에 무지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썼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화학 원리에 정말 취약한 필자조차 기본적인 원리는 이해가 되도록 설명해두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 여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뒤떨어지는 상태였다. 카슨은 잡지나 신문에 글을 기고할 때 사람들이 자신을 여자로 생각하지 않도록 이름을 이니셜로 표기했을 정도였다. 이 모든 사회적, 지위적 약점을 카슨은 꾸준한 연구와 환경에 대한 애정으로 극복해냈다.
2) ‘해충’은 정말 해충일까?
1학기 때 학교 이원근관인 빅토리 하우스에 살았었는데, 그때 방에 바퀴벌레가 나온 적이 있다. 선배들이 바퀴 잡는 약을 추천해주셨는데, 같은 회사에서 나온 제품이고 상표도 같지만, 강화된 최신 약으로 사야 더 잘 죽는다고 강조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처음 그 약이 나오고서 불과 몇 년이나 지났다고 강화가 필요했을까? 5년? 10년? 카슨은 살충제가 오히려 곤충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까지 내다보고 경계했다. 끊임없이 강력한 내성으로 살아남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에서) ‘해충’들을 인간이 화학적인 방법으로 박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해충’은 그야말로 인간의 목숨을 앗는 수준의 치명적인 곤충을 칭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농경에 방해가 되는 곤충을 말한다. 그런데 <침묵의 봄>을 읽으면서 알게 된 놀라운 점이 하나 있다. 원시 농업 시대에는 곤충은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으며, 대규모 농작과 단일 작물 재배가 시작되면서 해당 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특정 곤충 개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단일 농작은 다분히 인간의 효율성을 위한 인위적인 장치이고, 그 과정에서 자연의 섭리에 어긋났다면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겠구나 싶었다. 자연의 개체는 무엇이든 혼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In nature nothing exists alone.” (R.Carson, 1962: 51)
3) 살충제? 살생제.
<침묵의 봄>에서 주 내용으로 다루는 것은 바로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인데, 당시에는 인간의 몸에 극소량 흡수되는 DDT가 큰 영향을 발휘하지 않고, 인간의 ‘자정능력’에 의해 저절로 사라질 거라는 인식이 만연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DDT는 축적될 뿐 아니라, 몸속에서 지방 성분에 녹아 그 양이 증폭되고 독성을 띠게 된다고 한다. 또한, 천천히 축적되어 서서히 효과를 드러내기 때문에 병이 도져도 원인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은 필자가 관심있어하는 방사선, 방사능 피폭과도 공통된 점이라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카슨은 인공 방사선 문제도 빼놓지 않고 언급했다. 오랜 잠복기를 통해 나타나는 증상들은 대게 무시된다. 사람들은 즉각적인 피해가 없으면 원인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시대 불문하고 이것이 커다란 함정으로 작용하고는 한다.
살충제의 피해자는 주로 야생동물, 혹은 취약한 어린아이들이었다. 때로는 현장에서 위험물질에 가장 근접하는 농부이기도 했다. 누가 되었든 간에, 특히 동물이나 아이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런데 잘못된 관리 때문에, 혹은 무분별한 공중 살포로 병을 앓게 되거나 떼죽음을 당했다. 심지어 이 위험천만한 화학 물질을 과소평가한 디트로이드 시 경찰은 시민들과 토지 소유자에게 허락도 얻지 않고 저공비행을 하는 비행기로 살충제를 뿌려대다, 시민들의 우려가 빗발치자 방송국에 안전하다는 방송을 내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불편한 진실을 거부한 사실 은폐이기도 했지만, 그 참혹한 결과를 예상치 못한 무지이기도 했다. 심지어 살충제에 중독된 생물들은 한 번에 죽는 것도 아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살충제로 인해 죽음에 이른 종달새와 얼룩다람쥐의 시체 묘사를 보면서 참담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4) 맺으며
사실 필자가 <침묵의 봄>을 지금까지 읽지 않았던 까닭은, 첫 번째, 과학적인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두 번째, 50년이나 된 내용은 현재 상황에 뒤떨어지므로 별로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번째는 앞에서 말했듯이 친절하고 쉽게 설명되어 있었고, 두 번째 또한 틀린 선입견이었다. 5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노골적이고 극단적인 화학 물질 사용이 거의 사라졌을 뿐, 아직도 미미한 영향이라며 그 부작용을 간과하고 자연과 인간을 훼손시키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Intoxicated with a sense of his own power, he seems to be going farther and farther into more experiments for the destruction of himself and his world.” (L.Lear, 1998: 94) “—자신의 힘에 취해서, 인간은 스스로와 세계의 파멸을 향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카슨이 수상 소감을 발표하며 던진 강력한 경고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시되고 있는 부분이다. 도덕적 기준이 확립되기도 전에 과학과 기술은 자꾸만 진화한다. 둘 사이의 격차를 줄이지 않는다면, 이러한 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수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도,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활기의 봄을 되찾아야 한다.
참고 문헌
Lear, L. J. (1998), Lost Woods: The Discovered Writing of Rachel Carson, Boston.
Carson, R. (1962), Silent Spring,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