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스웨덴에 있느라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진 않았지만 자주 가던 카페가 달걀로 만들었던 제품을 어쩔 수 없이 버리고, 주변 사람들이 빈약해진 밥상에 불평하는 것을 보며 사태가 심각함을 느꼈다. 처음에 문제가 된 달걀 속 살충제 성분은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으로 개나 고양이의 진드기, 벼룩 등을 없앨 때 쓰는 화학성분이다. 일부 농가에서 닭의 진드기를 잡으려고 이들 성분이 들어간 살충제를 몰래 살포한 것이다. 문제는 이후 전체 양계 농장을 대상으로 실시된 살충제 검사에서 일부 농가의 닭과 달걀이 DDT를 함유하고 있음이 드러나 더욱 심각해졌다. 게다가 이들 살충제 초과 판정 농가 중 반 이상이 친환경인증 농가였다. 당장 나와 가족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판매처도 정부도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국민들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바로 이 DDT의 위험을 처음으로 고발한 책이다. 책을 다 읽고나면 이토록 사악한 화학물질이 어떻게 반 세기 뒤에도 여전히 활개를 치며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다. 카슨이 열거한 DDT와 그외 살충제의 위험성만 해도 △수질오염 △토양오염 △초목오염 △새, 물고기, 포유류 살해 △인간 건강 위협 등이다. 물론 이들 항목은 따로 일어나지 않고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서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중 DDT가 인간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은 아마 많은 독자들에게 가장 큰 충격이 된 부분일 것이다. DDT는 신경계를 손상시키고 에너지 생성 과정을 방해한다. 선천적 기형아를 낳고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백혈병과 암을 부른다.
카슨은 앞서 말한 살충제의 위험성을 넘쳐나는 사례와 실험 결과로 증명하고 있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사례의 분포다. 물론 카슨이 미국에서 연구를 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를 제외한 많은 사례들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국가들은 위생에 대한 관념도 없었거니와 살충제의 위험성에 대한 지식은 당연히 전무했다. 그저 선진국에게 그들의 위생을 맡기고 원조, 혹은 불평등한 무역을 거쳐 온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말라리아를 박멸하기 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DDT를 사용해왔다. (49~50쪽) 말라리아 모기가 DDT에 면역을 보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디엘드린을 사용했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금지돼있는 살충제들이 개발도상국에서는 사용되고 있으므로 선진국의 화학제품 기업들은 여전히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카슨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이를 없애기 위해 DDT를 살포받은 한국 군인들에 대해 언급한다. (297쪽) 미군은 아무것도 모르고 차례로 줄선 한국 군인들에게 죽음의 하얀 가루를 뿌렸다. 가장 큰 아군이었던 미국의 정책 앞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카슨이 책을 쓰고 10년 뒤 미국 환경부는 DDT 사용을 금지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말수가 적어지는 봄을 바라보는 이 여성학자의 우려는 무관심한 정부와 과학계, 화학 산업계에 큰 타격을 주었다. 책 읽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나는 이미 50년 전의 경고가 지금도 유효한가 하는 회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리고 얼마 뒤 살충제 달걀 파동이 일어났다. 국내 달걀 파동이 있기 일주일 전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도 살충제 달걀이 발견돼 수십 만의 닭들이 살처분되었다. 벨기에의 양계 업체는 폐계 처리된 닭고기를 아프리카에 수출하기까지해 비난을 받았다. 봄은 아직까지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환경에 대한 무책임함, 불평등한 식량 사다리를 방관하는 태도가 지속되는 한 봄의 침묵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