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은 죄와 벌이었다. 작년 읽은 이 책에 대해 잠시동안만 먼저 얘기를 해보자면, 재밌다라고 하기에는 주제와 분위기가 굉장히 무거워서, 표현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고, 새로운 관점과 가치관에대한 고민을 해보았다고 정리하기에는, 이야기전개가 드라마틱하고, 격정적인 순간은 마치 영화를 보듯, 혹은 너무 몰입되어 입이벌어지고, 목이 구부정한지도 모르고 계속 읽게되었으므로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겉햝기만 한 듯 표현이 모자라고 두루뭉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다시 이 작가의 소설중 하나이자, 꽤 다수가 그의 작품중 정수라고하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에는 공통점이있음을 꺠달았다. 그는 인간을 너무도 잘알았다는 것. 인간이라면 겪을 수 밖에 없는 문제들에, 그리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 그 모순들에 과감히 생으로서 맞섰다는 것 그것이 도스토예프스키라고 그의 생각들, 그러니까 그의 책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소설의 특징이자 아주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이 리얼리즘의 치밀한 묘사가 필름처럼 돌아감겨서 보여주는 격정의 순간, 그리고 아무도 쉽게 답할 수 없는 그 인간존재가 가진 과제에 치열하게 맞서는 그의 소설적 현신들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얻는 희망과 좌절감이 너무도 진하게 담겨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죄와 벌을 조금 더 얘기하자면, 나는 사실 이 책을 두번 읽었는데, 어렸을 적 저학년을 위한 도서로 한번, 그리고 원전으로 한번이다. 감히 말하건대, 나는 어렸을 적 읽은 경험이 성인이되어 제대로 읽은 경험에 절대 못미치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저학년용 도서였다고는해도, 그 묵직한 텍스트가 주는 무게감과, 굉장히 비극적인 분위기가 기억에 꽤 남았기 떄문이다. 이 책의 가장 특별했던 점은, 그의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종교와 신앙에 대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있었던 점인데, 나는 초등학교때 이 책을 읽고는 인간의 어떠한 현명한 규율과 합리적인 법칙들이라도, 그것을 만든 인간 자신이 갖는 비합리성과 유한성의 나약함이 가져오는 모순에 놀랐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잠시 고민하다가 말았겠지만, 나는 그 떄 처음으로, 그 나이에 교회를 가도 쉽게 얻지 못할 중요한 질문을 가질 수 있게된것이다.
내가 유독 관심을 보였던 테마가 신앙과 종교였기 때문에, 나는 죄와 벌을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러한 관점으로 보자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이 주제들이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는데, 특히나 대심문관부분이 그러하다. 죄와 벌이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는다'는 전제를 위협하는, 언뜻 반사회적이지만 본질에 대한 물음과 탐구 였다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의 물음은 '죄를 지으려고하는 악은 왜 탄생하고, 신의 입장은 무엇인가' 라고 볼 수 있겠다. 놀랍다고해야할지, 아니면 당연하다고 해야할지. 이러한 질문에 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신의 입장에서, 인간의 악은 이미 예상된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질이 그러하기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인간의 선한 행동이 존재하듯이 악의 마음과 그에 비롯한 행동도 존재할 뿐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신의 방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깊은 관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신은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그의 죄를 묵묵히 떠맡는 존재이기때문이다. 다만, 단 하나의 약속을 지키면 이 무한하고, 전능하며,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그것은 오로지 믿음인 것이다.
이것은 타종교와 비교되는 기독교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의 입장을 꼼꼼히 묘사하고 표현하므로써, 인간의 비루한 악으로부터 신의 완벽한 믿음으로까지 연결시킨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교회를 다니지는 않고 성경을 읽지는 않는다. 다만, 종교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 이유를 떠나서, 그것이 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까라마조피가의 형제는 소설로써 극적인 효과로 메세지를 던진다고 생각되었다. 어떤면에서 보자면, 사실 나는 종교를 가까이하지는 않지만, 신의 존재를 생각하는, 애매모호한 위치, 혹은 신을 믿으려는 과정중에 있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생각난 사람은 키에르케고르였는데, 그의 종교에 대한 태도와 절대적인 것에 대한 그의 관점이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존재에 감히 닿을 수 없고 언급할 수 없어 처절하지만 그럴수록 그 존재가 위대할 수 밖에 없고, 무한하게 남겨진다는 그의 생각이 독실한 기독교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가 왠지 결론을 낸다고했다면, 그는 인간세상에 어떤 것이라도 가능하며, 그것은 항상 신이 관망하고 있을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신을 믿든 믿지 않던지, 우리는 어떤 절망과 고난에 빠지더라도, 결국에 삶을 사랑하며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인것이라고 결론짓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