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검은 배경에 빛나는 점들이 곳곳에 찍혀있으며 그 어떤 소리도 존재하지 않고 경계 또한 보이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이 우주라는 개념을 마음 속으로 떠올렸을 때 그려지는 그림은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덧붙여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소설/만화 까지 각종 매체를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우주를 보여주고 다시 다른 사람의 우주를 만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눈으로 지구조차 보지 못 한 사람들이며 개념적인 존재로 우주는 존재한다.
우주라는 말은 한자어로 집을 뜻하는 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주 안에 있으면서도 우주를 알지 못하기에 이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생겨났다. 이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가에 대한 질문들이며, 이 질문들은 더 근본적으로 우리의 존재 이유를 묻고는 한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오래 전부터 과학 도서의 바이블로 손 꼽히는 책이다. 이 역시 제목처럼 우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그 가장 앞 장에는 종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이어지는 내용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설명 (세계의 조화, 눈으로 보이는 우주), 혹은 설명되지 않는 것들 (지구 밖의 생명체, 시간과 공간 등)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 모든 이야기들은 이유를 찾고 싶어하는 데에서 시작 되지만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이야기가 길어질 수록 점점 더 요원해진다. 우리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이 곳은, 어쩌면, 우리가 없었어도 존재했을 것이다.
위의 책이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인간의 수명에 비해서 그런 것이지 설명하려는 대상의 연륜에는 티끌만큼도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의미 없는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우주는 너무나 작아서, 그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어떤 것이 올바른 것 일까. 우리는 시간과 공간 상에서 무기력한 존재 임에도 불구하고 오만을 부리는 것 일까, 아니면 정말로 의미있는 존재이기에 이러한 생각을 시작하게 된 것 일까. 신은 답을 아실지 모르지만 우리의 신은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결국 우리 존재는 우리가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