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책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 책을 쉽게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 한다.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라는 책을 아세요?"라는 질문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을 다 읽으셨냐는 질문에도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실로 자랑스럽다. 무려 7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와 줄일대로 줄인 글자들. 내가 이걸 끝낼 수는 있을까 시작하면서도 절대 확신하지 못 했다. 사실 이 책을 한 번에 완독하지는 못 했다. 학기 내내, 기간을 두며 찬찬히 읽어나간 책이다.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책의 모든 내용이 생생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책은 여느 두꺼운 책보다 훨씬 빨리 읽혔으며, 나를 단숨에 지구를 넘어 몇억 광년 너머의 세계로 나를 데려갔다. 이 책을 다시 펼칠 때 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의 모든 의식과 감각은 우주 저 멀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책은 자연과학 분야로 분류된 책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분류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책의 내용 대다수는 우주에 대한 과학적인 증명과 사실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나열해놓은 과학 분야의 책은 지금껏 많이 출판되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이렇게 유명해지고, 이렇게 특별해질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그 사실들을 나열하고 해석하는 작가의 철학적 역량 덕분이다. 문학, 역사, 종교, 철학, 심지어 정치의 영역까지. 코스모스는 그야말로 우주와 같이 방대한 양의 사유를 제공한다.
나는 문과 학생이다. 수학, 과학 분야는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믿고 살아가는 문과형 머리를 타고난 사람이다.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는 꽤 힘이 들었다. 물리학, 양자역학과는 일평생 거리를 두고 살아간 나에게,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진행되는 칼 세이건의 우주에 대한 설명은 마치 선행학습이 익숙한 학생들에 둘러싸인 교실에서, 나 혼자 선생님의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 한 채 고군분투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렇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찾아보기도 했지만, 나의 범주를 넘어선 설명은 그냥 휙휙 넘어가기도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5년, 또는 10년쯤이 지나서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이해의 범위가 더 넓어질 수도 있겠고,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겠다. 그것이 독서, 특히 명작을 읽는 행동의 묘미 아니겠는가. 책은 변하지 않지만 그 책을 읽는 사람은 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에 따라서, 책을 이해하고 흡수하는 것이 달라진다.
어찌되었든, 20살의 내가 이 책에서 찾은 가치는 작가의 철학과 우주와 인간의 존재를 잇는 문학적 서사이다. 책의 저자 또한 책의 중요성, 글쓰기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언급한다. <11장, 미래로 띄운 편지>가 나에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책을 읽음으로써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책의 저자는 시간을 건너뛰어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직접 들려준다. 글쓰기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인 것이다. 글쓰기를 하는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모두 마법을 부린다. 그는 책을 씨앗에 빗대기도 한다. 책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동면하다가, 어느 날 가장 건조한 흙과 척박한 환경에서 갑자기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씨앗과 같은 존재이다. 우주가 정해놓은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지구에서 뛰어넘는 방법은 글과 책이다. 장담컨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또한 인간의 곁에 오래도록 남아, 우리가 지금은 닿지 못 하는 인간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