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디스토피아 소설이라 하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그리고 <동물농장>이다.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싱클레어 루이스의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껏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으면 암울하고 묘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소설의 내용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매우 생생하고 날카롭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아주 상상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우리 사회에 벌어질 수 있을 법한 내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거대한 권력과 정치 속에서 아바타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의 희망도 밝은 미래도 없어 보인다.
그에 비해 이 소설은 마치 동화같다. 우리에게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독특한 괴짜의 몽상같이 느껴진다. 이 소설에서 거대한 정치권력과 독재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뛰어난 상상력과 능력을 가진 과학자이자 시간여행자와 아주 먼 미래, 서기 802,701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후손이다. 인간이라고 하기에도 어딘가 어색하고, 그렇다고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닌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의 상상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가 몇 백년 전의 조상들을 보고 미련하다고 혀를 차듯 먼 미래의 후손들은 지금보다 더욱 발전된 환경에서 더 나은 조건을 가지고 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의 후손은 고작 120cm의 신장에 겨우 다섯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귀찮아하고 금새 흥미를 잃버리는 탓에 주인공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나 정보 획득을 하지 못한다. 작가가 묘사하는 미래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나는 세상이라기보단 고대의 모습과 비슷하다.
시간여행자는 사라진 타임머신을 찾다가 지하에 사는 또다른 후손을 마주치게 된다. 낮에 지상에서만 움직이는 엘로이와는 다르게 이들 몰록은 지하에서 어둠속에서만 움직인다. 시간여행자는 이에 대해 "결국 지상에는 즐거움과 안락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가진 자들'이 살게 되고, 지하에는 '못 가진 자들', 즉 자신들의 노동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해 나가는 '노동자들'이 살게 될 것입니다." (p.88)라고 말한다.
그 모습이 현실감이 있다기 보다는 허구처럼 느껴져 오히려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먼 미래에도 인류는 지속될 것이라며 낙관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모습이 인류의 종말에 가깝다는게 무서웠다. 인류가 지속되어도 그 미래가 유토피아일지, 티스토피아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점차 퇴화된 인류조차도 이분화 된 계급 속에서 산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으름과 나태로 인해 퇴화된 지배계층과 지하에서 억눌리고 노동에 점차 퇴화된 피지배계층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점차 퇴화된 인류조차도 이분화 된 계급 속에서 산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의 상상처럼 이 소설이 출간된 1895년, 아니 그보다 더 예전부터 이어졌던 계급구조가 앞으로 80만년 동안 지속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야기의 끝에 시간여행자가 더욱 더 먼 미래로 여행을 떠났을 때는 거의 종말에 가까운 모습의 지구를 만나게 된다. 생명체라고는 어둠 속에서만 꿈틀거리는 것이 유일한 상태의 지구는 마지막까지 잡고 있던 희망까지 사라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