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 시작 30분 만에 수사관이 책상을 ‘탁’치며 추궁하자 갑자기 ‘억’하고 쓰러졌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은 청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이 책은 현대사를 깊이 배워보지 않았던 나조차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전두환 정권 시기의 한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저자(본교 신문방송학과 신성호 교수님)가 기자 시절 처음 발견하고 특종으로 만들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거서 책모임을 통해 박종철 사건을 파헤친 교수님이 본교에 계시고, 또 사건의 내막과 시대상과 이어지는 커다란 질문거리를 처음 알게 되었던 만큼 <특종 1987>과 책모임이 내게 주는 의미가 깊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특종 1987>로 독서리뷰를 작성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여기 리뷰에서는 책 내용보다는 내가 <특종 1987>을 읽으면서 든 생각과 책모임에서 토론한 질문 위주로 써보고자 한다.
⋄ 정부에서 축소, 은폐하려던 사건. 취재원들을 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까?
“경찰, 큰일났어”라는 짧은 대화문이 이 책의 첫 장에 나온다. 이 말 두어 마디가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담고 있었는지는 책을 모두 읽으면서 체감할 수 있었다. 대검찰청 이홍규 공안4과장이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저자가 박종철 사건을 가장 처음 보도하기까지 다양한 취재원들을 대하면서 사건이 드러나게 된다. 이홍규 과장은 1987년 특종의 딥쓰로트(Deep-throat)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존재는 25년 만에 밝혀지게 된다. 교수님은 이홍규 과장이 설득되지 않았다면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와 취재원 간에는, 비록 시대가 시대일지라도,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 이상에야 서로 기사가 보도되는 것을 인정한다고 한다. 딥쓰로트를 대하는 기자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 지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 동아일보는 왜, 어떻게 그동안 지켜온 보도지침을 깰 수 있었나?
당시에는 보도지침이 있었다. 지침이 있고, 문제가 되는 기사가 보도되면 사후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도 있었다. 전두환 정권은 많은 기삿거리를 가지고 있었을 테지만 박종철 사건 보도 이전까지 언론사들은 보도지침을 대개 준수하고 있었다고 한다. 박종철 사건이 특별한 이유 중에 하나다. 책모임의 토론과 개인적인 생각의 정리를 통해서 보면, 보도지침이 깨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정권 하에 축적되어 온 불만의 고조다. 둘째, 서울대의 한 젊은이가 고문치사하면서 발생한 인권 문제다. 셋째, 중앙일보다 치열하게 보도 경쟁을 하고 있던 동아일보가 느꼈을 불안감과 경쟁 심리다. 동아일보가 중앙일보에게 소위 ‘물을 먹으면’서 경쟁적으로 보도함에 따라 보도지침이 무너지고 언론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 제 역할을 해내는 언론, 한국 언론계의 과제는 무엇일까?
언론인을 준비하는 학우들이 있어서인지, 교수님께서 언론계에 오래 몸담으신 분이라 그런지, <특종 1987>에서 언론이 민주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인지 책모임에서는 현재 언론계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 종합하자면, 한국 언론계에 관해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언론사의 개수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 광고수입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콘텐츠 퀄리티의 문제는 어떠한가, 좋은 기사를 위해 장기간 사건을 추적할 수 있는 환경인가, 뉴스가 공짜라는 인식은 어떤 영향을 주는가.
앞으로 미디어 연구에 관심을 두고 싶은 나로서 <특종 1987>은 책 내용적으로도, 이면의 토론거리로도, 본교 학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는 텍스트로도 만족스러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