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영국 카디프 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파시즘을 전공했다. 단어만으로도 오싹한 느낌을 주는 파시즘은 다른 어떤 사상보다도 많은 비난을 받고 그 자체도 많은 이론과 대립항을 갖는다. 이 악랄한 사상에 대한 이해의 첫걸음으로, 책은 파시즘에 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고 말한다. 가령 작가는 파시즘의 정의에 관한 세 가지 대표적인 접근법을 소개한다. 첫째로 마르크스주의 접근법에서는 파시즘을 자본가와 프티브루주아지들이 사회주의를 붕괴시키기 위해 공모한 운동으로 본다. 그러나 이 방식은 기존 자본가와 대립하기도 했던 프티부르주아지의 역할을 축소한 접근이다. 둘째로 베버주의 접근에서는 파시즘을 봉건적 엘리트 세력이 산업혁명 이후에도 자신들의 지위 유지를 위해 동원한 것으로 본다. 이 역시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파시즘의 급진적 성격을 설명하지 못한다. 세번째는 전체주의 접근법인데 급속한 변화와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꿈꿔 파시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앞의 두 방식에 비해 파시즘의 내용적 측면을 살펴본 의의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파시즘의 혁명적 측면을 너무 강조했다.
'파시즘은 스킨헤드에게도, 지식인에게도 호소력을 가진다. 혁명을 부르짖지만 보수주의자들과도 손을 잡는다. 마초 스타일을 구사하지만 많은 여성의 호감을 산다. 전통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한편, 과학기술에 환호한다.'(19)
지은이는 자신이 묘사하는 파시즘 역시 특정한 시각일뿐이라고 지적하면서도 학계의 여러 접근법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독일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실제 파시즘을 받아들였던 과정을 설명하고, 극우정당으로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파시즘의 여파들을 살펴본다. 책을 덮을 때까지 서로 다른 사회를 종합한 파시즘의 성격에 대해 명쾌한 진단이 내려지진 않지만, 그래서인가 이 사상이 얼마나 다양한 독재자들의 구미에 맞춰 이용됐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파시즘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히틀러의 독일일 것이다. 지은이는 두 독재자가 정권을 잡고 몰락하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둘 간의 공통점과 차이를 분명히 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모두 1차세계대전 이후 떠오른 사회주의에 대한 분노와 내셔널리즘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보수주의자들과 의원내각제를 유지하겠다고 거래한 뒤 무력을 통해 좌파를 몰아냈다. 그러나 입헌군주제였던 이탈리아와는 달리, 바이마르 공화국이었던 독일은 사회주의가 정권에서 유지되었고 히틀러는 집권까지 더 오래 기다려야했다. 대신 늦게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에 대한 군, 공무원, 교수 사회의 충성은 훨씬 더 맹목적이었다. 또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악명 높은 인종주의는 무솔리니의 파시즘에선 볼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파시즘은 이들 두 나라에서만 싹튼 것은 아니다. 작가는 스페인에서 프랑코의 독재, 헝가리의 호르티 정권, 루마니아 코드레아누의 반유대주의 등을 제시한다. 아르헨티나의 페론, 인도국민회의당의 당수 보스 등 비유럽 지역에서도 파시즘에 호감을 느낀 정치인이 존재했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의 언급이 없는 것은 아쉽다. 일본을 2차세계대전의 주역으로 만든 것은 분명히 파시즘이었다. 피폐해진 농촌 경제와 서구에서 들여온 민주주의 사상은 천황 중심의 일본을 위태롭게 했다. 따라서 1920년대 관료들은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파시즘 관련 책자에 주목하게 된다. (주1)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정권이 식민국 일본과 공산국 북한이라는 두 (표면적인) 적을 세워 내셔널리즘과 반공을 주창한 것도 나는 파시즘의 일부라고 본다. 이후에도 대한민국은 개혁을 지껄이며 집권한 지도자들이 군을 장악하고 반공을 강조하여 독재를 이룬 것을 보아왔다. 억울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죽인 국민보도연맹사건이나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군이 총을 쏜 5.18 사태는 무솔리니나 히틀러 못지 않은 잔인함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오늘 날의 극우 정당을 '시간을 초월한 파시즘'(ur-fascism, 에코의 용어다)의 일부로 본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강조하는 미국 우선주의나 얼마 전 마크롱과의 투표에서 패배한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 등이 그것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파시즘은 그만큼 많은 논쟁과 비호감을 낳는다는 점에서 다른 사상과 비교된다. 그러나 단순히 거부할 게 아니라 오늘 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맥락에서 그러한 극우적 민족주의가 발생하고 또 지지받는 원인을 살피려면 파시즘에 대한 통찰은 아직 유효하다.
1 김효신, 한국근대문학과 파시즘, 2014, 컨텐츠코리아, 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