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좋아한다. 늘 신선한 소재와 나름의 유머를 구사하며 그 속에 인간의 존엄성이나 죽음 등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숨겨놓는다. 파피용은 사실 그 내용을 먼저 알고 읽은 책이다. 나름의 스포일러를 감수하고 읽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용을 미리 알고봐서 더 술술 읽혔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제목 그대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명언이다. 또는 역사는 반복된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만든 재앙에 빠진 인간들, 그리고 소수의 인간들이 그 재앙으로 부터 벗어나고 다시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집단을 꾸리고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탈출한다. 처음 이 우주선 내는 그야 말로 유토피아. 모두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활하고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찬 하나의 사회를 구성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과 불신은 결국 화를 초래한다. 그리고 반드시 존재한다. 이상 사회 내의 작은 불씨 하나로 인해 우주선은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그러나 또 그 위기를 수습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없던 계층, 계급도 세대를 지나며 점차 생기게 된다. 결국 그들이 피해서 도망쳤던 재앙스러운 지구의 모습을 반복하는 셈이 된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여러 연구를 진행하고 사람들의 심리나 사회 현상들을 분석한다. 그러나 나는 유토피아란 인간 본성을 버리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고, 나의 경쟁자인 남보다 우위적인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물론 겉으로는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겸손의 미덕이므로 보통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 우리나라 속담 중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결국 인간의 욕심이 존재하는 한 모두가 행복하거나 모두 평등하게 사는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정치인들의 정책 중에서도 단순히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는 포퓰리즘 정책을 불호한다. 단순히 그것을 공약으로만 내걸고 지키지 않는 것도 물론 싫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행해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들이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절대 모두에게 많은 것을 주기만 한다고 모두가 행복한 결과를 낼 수는 없다. 받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지구와 인간의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이 책에서의 지구에 나타난 재앙이 우리와 전혀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더 큰 문제는 우리는 책에서의 우주선 탈출 같은 그나마의 해결책조차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점점 심각해지는 사회의 문제 들에 대해 근시안적인 대안책만 내놓는 실정이다. 사람들의 심신은 점점 피폐해지고, 환경은 파괴되고 국가 사이의 냉기는 완화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4차 산업 등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또 이러한 위기가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의 발달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굉장히 비관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인류의 멸망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사는 동안은 이 재앙이 조금이라도 완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