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절반을 읽을 때까지 제목 '표백'이 ‘떠다니다, 유랑하다’라는 뜻의 漂泊(이 글자의 음은 표박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인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이 사회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한다는 의미로 이해했건만 표백제의 표백이라니. 그럼 도대체 무슨 뜻인 거지.
P.77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그래서 세연과 친구들은 세상에 더 이상 발전할 것이 없다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처음에는 자살을 하는 것이 현실도피이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라고 치부하였지만, 그들은 그런 오해를 막기 위해 일부러 가장 걱정근심 없는 때에 자살을 감행한다. 이 설정이 현실과 거리감이 있다고 느껴질 수 있겠으나 작가는 그만큼 논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살이 말도 안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우리가 자살하지 않을(못할)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주인공 적그리스도가 3년 뒤에 세영의 주장을 반박할 멋진 제안을 들고 온다 했을 때 나는 많은 기대를 했다.' 이 이야기가 새드엔딩으로 끝나지는 않겠구나.'라는 일종의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자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 혼자서는 세영의 주장을 깔끔하게 반박한 논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고 소설에서 적그리스도는 끝내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20대 자살이 급증했다는 기사로 마무리 지었다. 이 자살자 중에 적그리스도가 포함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책의 앞부분에서 재키가 이미 어느 정도 해답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한다.
P.30
그 다음에 나오게 될 이슈들은 한 세대의 과업이나 종교의 대용품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사소한 것이리라. 성적 소수자 보호, 동물 보호, 장애인 인권 문제, 소비자 운동, 저개발국 원조 프로그램 등등.
과거 세대가 이룬 민주주의라던가 자본주의 정착 같은 중요한 역사적 과업과 비교하면 사소하기 짝이 없지만 그 가치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지 않은가. 원래 30점 맞던 아이가 70점 맞는 것 보다 90점 맞던 아이가 100점 맞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책은 젊은 세대의 방황을 옹호하거나, 젊은 세대들이 도전 정신이 없다며 매도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저 현 젊은 세대의 모습과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해냄으로서 동일세대의 독자들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다른 세대 독자들에게는 이해를 도왔다. 참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