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이 사회에서 ‘우리’라는 말보다 ‘나, 너’라는 말이 더 일상적인 단어가 되어버렸다. 어느 순간 전 세계 공동체를 이야기하며 함께 잘 살자는 이야기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드디어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현대사를 직면한 것 같다. 함께, 같이, 우리 모두가 아닌, 나 혼자, 나만을 중시하는 사회의 문제점이 드디어 수면으로 떠오른 느낌. 오로지 홀로 많은 이익을 취하려 하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려는 이기주의가 지구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보면서도 가장 가슴 아팠던 이야기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먹거리가 생상 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풍족하게 먹고 살 음식이 충분한데도 공정하게 나누어지지 않아 누군가는 다이어트를 할 때 다른 누군가는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러니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농업 및 먹거리 체계는 많은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다. 수 세기 동안의 생산성과 효율성 증대에도 불구하고 만성적 영양실조 문제로 빈곤층, 특히 개도국 빈곤층 중 다수가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자 나라의 자국 농민 지원책으로 가난한 나라는 매년 1000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있고 무역을 통해 거래되는 전체 먹거리의 78%가 단 20개 국가에서 생산되며 전 세계 식품 판매의 19%가 10대 소매업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을 잘 보여 준다. 최근 여러 해 동안 농가 출하 가격 하락으로 전 세계 농민이 큰 손해를 보았지만, 2007년 초부터는 먹거리 가격이 상당히 상승했다. 이런 지속가능하지 않은 관행으로 생긴 부정적인 영향은 결국 또 가난한 사람, 특히 최빈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부분 돌아간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다 잘 알고 있음에도, 비만과 굶주림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왜 불공정하고 불량한 식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일까? 결국 답은 가진 자들의 나누는 마음, 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인 것 같다. 최근에 들어서서 고소득층, 즉 소위 부자나 재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부자 증여세 등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일각에서는 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다 기부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전체 GDP의 2퍼센트 이하만이 기부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보면, 아직까지 나아가야 할 길이 더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불특정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본다. 지금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내가 왜 그래야하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어 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절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공존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그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기업들은 이윤을 추구하되, 사회적으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되, 열심히 일하고. 다 같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모두가 자신의 목표로 나아갈 때 앞만 보고 나아갈 것이 아니라 옆을 보며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