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힘들다. 내용과 무관히,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첫 느낌은 그렇다. 쉽게 와닿는 명제의 엄밀한 증명을 본 듯하다. 사실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책의 두께에 비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책을 간략히 요약해보자. 저자는 프라이드, 즉 자부심을 소개하고, 중요성을 부각하며, 진정한 자부심 갖기를 독려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렇다면 자부심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자부심은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의 행동을 가치있게 느끼고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다. 자부심은 진화의 산물로, 우리 인류를 포함해 많은 종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자부심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다가가기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자부심을 기반으로 한 행동은 위업과 막대한 부, 권력, 종래에는 인류의 눈부신 발전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부심에는 "진정한 자부심"과 "오만한 자부심"이 있다. 이 둘을 구분하기란 쉽지가 않다. 표정과 몸짓 등을 포함한, 두 자부심의 외적 표현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부심과 오만한 자부심이 주변과 자부심을 느끼는 주체에게 미치는 영향은 극단적인 차이를 보인다. 진정한 자부심이 이타적이고 사회친화적인 양상을 띠는 반면, 오만한 자부심은 이기주의 나르시시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 양상을 띤다. 많은 사회적 시선이 자부심을 자만과 연결짓는데, 이는 자부심의 오만한 부분만을 보고 섣부른 판단을 내린 결과이다. 그렇다고 자부심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오만한 자부심이 재수없어 보인다 하여 자부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진정한 자부심의 이점마저 포기해버리는 아주 극단적인 선택이다. 더군다나 오만한 자부심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결과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것이 아주 잘못됐다고 판단할 근거도 없다. 자부심은 어떤 종류의 자부심인지를 떠나서 인류 발전의 필수적인 원동력이다. 우리는 자부심을 우리에게 내재된 감정임을 인정하고 적절히, 그러니까 진실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프라이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간결하다. "우리는 많은 심리실험을 통해, 진정한 자부심이 오만한 자부심보다 사회와 개인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추구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보였다. 여러분은 오만한 자부심의 유혹을 뿌리치고 진정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사실 너무나도 도덕적이고 전형적인 메시지에 화가 날 뻔했다. 오만한 자부심에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진정한 자부심으로의 변신을 꾀해야하며, 오만한 자부심 마저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어떻게 자부심을 가져야하나. 하지만 울분은 이내 관찰로 바뀌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오만한 자부심의 노예이다. "내가 이루어낸 모든 업적은 다 내가 잘 나서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나는 유아독존하고, 대체 불가능하다. 한 번만 읽어도 완전히 이해될, 하찮은 정보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오만하고 기만한 생각은 항상 나를 뒤덮었다. 책에서 묘사한 오만한 자부심의 특징인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요인(이를테면, 신체조건과 선천적 지능)에 성공의 원인을 둔다.'와 나 자신은 소름끼치도록 닮아있었다. 나는 이 오만한 생각을 떨쳐내고 진정한 자부심을 추구하고 싶다. 스스로 해결책을 갈구했기 때문에 책의 결말에 실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해답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부심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바, 또는 되고 싶은 바를 정확히 알고, 자신의 노력을 성공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단 걸 배웠다. 한 장 남짓한 분량에 저자는 진정한 자부심으로의 전환법으로 이 마음가짐의 차이를 항상 기억하라고 한다. 어쩌면 오만한 자부심의 유혹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작지만 마음가짐을 잘 살피는 게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객체로서의 나를 날카롭게 관찰하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