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파티룸을 잡고, 늘 먹던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것
B) 경치 좋은 곳에서 비싼 밥을 같이 먹는 것
자, 둘 중 어느 선택이 의미 있는 선택일까? 대개 B를 의미 있다고 선택할 것이다. 당연히 파티룸과 경치 좋은 곳 중에선 경치를, 배달음식보단 비싼 밥이 당연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친구는 무엇을 선택할까? 친구의 답을 듣기 전에, 화자의 프레임을 분석해보자.
화자의 프레임
화자는 우선 의미를 돈으로 프레임하고 있다. A와 B는 ‘돈’으로 비교가 되는데, 당연히 비싼 것이 싼 것보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돈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는 인류가 아니던가? 배달음식이나 비싼 밥으로는 의미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는 장소로 의미를 강화하려 한다. 파티룸보단 경치 좋은 곳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더욱 낭만적이고 특별한 데이트가 된다.
이쯤에서 살짝 불편을 느꼈다면, 우리는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불편을 느낀 이유는 친구가 의미를 돈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선택지를 두 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고, 항상 생각하는 소재를 처한 상황의 판단에 투영하는 경향이 있다. 화자는 당시에 돈이 아주 중요했다. 화자는 의미를 다른 체험이나 소소한 편지로 프레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지를 두 개로 정하고, A와 B가 모순 관계인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둘은 모순관계가 아니다. 모순관계는 ‘나는 밥을 먹고 있지만, 밥을 먹고 있지 않다.’처럼 두 가지 명제가 동시에 참도, 거짓도 될 수 없다. 논리는 의미와 감성을 배제한다. 반대 관계는 두 명제가 동시에 참은 될 수 없지만, 동시에 거짓이 될 순 있다. 배달음식도 안 시켜 먹고, 비싼 밥을 같이 안 먹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해, 화자의 선택지는 모순이 아니라 반대 관계였고, 다른 선택지는 분명히 존재했다.
‘의미’가 돈으로 프레임 될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장소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화자에게 돈이 중요하지 않았다면, 의미는 추억, 기억이나 정성을 담은 무언가로 바뀌었을 것이다. 화자는 본인에게 중요한 프레임을 남자친구 생일에 씌워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 프레임은 그저 본인에게만 중요한 프레임이었다. 우리는 A 상황에서 화자에게 돈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온전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4시간밖에 없었다. 그런데 화자는 무제한으로 대실 할 수 있는 파티룸과 4시간만 사용할 수 있는 파티룸을 고민했다. 화자는 같은 가격이라도 가격 대비 더 오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한대실을 선택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시간이 최대 4시간인데 왜 그런 비교가 필요하겠는가?
교묘히 얽힌 프레임
나는 수많은 프레임이 연결되고, 겹쳐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중심 프레임에서 시작하는 판단은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프레임과 이득-손실 프레임을 거친다. 소비가 아닌 체험 프레임으로 자기중심 프레임을 전환하려 했지만, 체험 프레임조차 자기중심 프레임에 지배받았다. 우리는 최종 판단을 할 때, 본인이 보편적인 선택을 한다며 합리화 프레임을 씌운다. 겹치는 프레임은 문제를 해결 방식에서 궁극인에 가까운 프레임을 잘 구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판단을 할 때, 프레임은 순식간에 겹친다. 우리는 특정한 방향으로 결정을 해야 하고, 모든 프레임을 성찰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이 사실은 근본적 프레임을 실패하면, 리프레임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준다. 예를 들어, 타인과 비교 프레임과 회피 프레임이 결합했을 때, 의미보단 방법만 추구하는 인간이 된다. 과거를 왜곡한 ‘현재’ 프레임과 명목에 현혹되는 ‘라벨’ 프레임이 결합되면, 잘못된 과거 회상 또는 미래 예측을 하게 된다. 자신이 바라보는 프레임을 긍정적 방향으로 리프레임 해야 한다. 어떻게, 프레임의 혼합을 성찰할 수 있을까?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비교 프레임을 성찰 프레임을 바꾸긴 어렵다. 뭐든, 머리로 아는 것을 현실에서 실현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아, 어렵구나.'하며 끝내선 안 된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내면의 힘을 쌓아야 한다. 프레임은 기술이다. [준비된 이미지는 철학을 담고 있다]는 글의 천연염색 비유를 보면, 프레임만 바꾸는 게 왜 불가능한지 알 수 있다. 인간의 한계 때문에 프레임만 바꿀 수 없다. 프레임이나 이미지도 모두 철학에 적셔야 할 것들이다. 생각을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글에 충분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좋은 게 좋은 거 프레임보단 위대성을 향한 반복 프레임으로, 자기중심 프레임을 보완하기 위해 대화와 공부로, 독단과 오만보단 겸손함과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프레임 고찰과 생각 전환이 주관을 없애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 각자의 찬란한 주관이 그대로 빛을 발하도록, 인간다운 각자의 욕망이 발현되도록 스스로를 리프레임 해야 한다.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s://blog.naver.com/davichi023/221341104487
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