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세계사를 배울 때마다 필자는 세계사와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항상 느꼈다. 깊게 공부하면서 필자는 처음으로 세계 3대 종교뿐만 아니라 마니교, 시크교 등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세상의 종교들이 피워낸 문화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특히 크리스트교, 그 중 프로테스탄트는 서양사에 빠질 수 없는 부분이라 더 애정을 갖고 공부했던 종교였다. 여기서 프로테스탄트란 16세기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와 성립된 종교단체, 또는 그 분파를 뜻한다. 이것이 필자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고자 했던 이유였다.
설렘을 가득 안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번역이 된 책임에도 한 번에 문장이 이해가 가지 않아 처음부터 무척 당황스러웠다. 또한, 서양 중심적으로 연구하고 책을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저자 서문에 나와 있듯이 저자는 동양이 아닌 서양에만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는 발전된 수준의 과학, 법, 건축 기술 등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자본주의에 관하여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정기적 시장에 맞추어진 합리적 산업 조직은 서구 자본주의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처음에 필자는 이 책이 막스 베버가 편견을 갖고 쓴 것에 불과한 것인가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천천히 다시 읽어보면서 점차적으로 막스 베버가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의문들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이 책은 분명 프로테스탄트 속에 녹아 있는 윤리와 자본주의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인데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중 루터교를 연구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는 이에 관해 따로 작은 주제를 만들어 설명할 정도로 이 부분에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에 대해 의문을 갖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금 더 탐구해 보았다. 16세기 초,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서 면벌부를 판매했다. 교황은 면벌부라는 개념을 이용해 면벌부를 사면 구원받는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했다. 루터는 이에 ‘95개조 반박문’으로 교황의 비논리에 일일이 반박하며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여기까지가 교과서에 나온 부분이다. 그러나 루터가 완전한 종교개혁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개혁 중 루터는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이에 대항하여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뒷받침이 되어주던 제후들의 세력을 잃을까 두려워하던 루터의 모습을 보여주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 루터파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을 때 교황의 지배를 벗어나 종교 선택의 자유를 얻은 것은 루터를 지지해 주었던 제후들뿐이었다. 이런 점에서 루터교는 기존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루터는 보편적인 사람들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 1부 3장에서 나타났듯이 루터의 직업개념이 “인간이 신의 섭리로 받은 것이며 그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전통주의적 생각에 그쳤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반면 칼뱅주의는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결국 이 책은 칼뱅주의가 그 당시 상인들의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키웠고, 이는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이 책을 쓴 막스 베버의 핵심 주장이다. 필자에게 칼뱅주의하면 이 종교에서 유래된 청교도가 생각나고 이 청교도신자들이 일으킨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이 생각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책 2부 2장에서 그 부분을 다루었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막스 베버와 통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쁘고 짜릿했다. 원래 칼뱅주의에 대한 내 생각에 막스 베버의 생각이 더해져 더 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칼뱅주의가 상공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이유는 재화를 획득하는 것과 욕심을 부리는 것을 분리해서 설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금욕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현세에서 돈을 열심히 벌면서도 금욕을 지키는 독특한 교리가 탄생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칼뱅주의는 완전한 종교 개혁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두 프로테스탄트 종파들을 역사에 비추어 생각해보고 나니 이전에 서양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가톨릭이 저항을 받은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여러 가지 역사적 이유들이 있겠지만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달자에게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종교가 인간에게 전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내용은 변함없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교리를 잘 설명해주어야 할 전달자들이 오히려 이를 이용해 부정, 부패를 일삼고 신자들을 괴롭혔다. 이런 가톨릭 전달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점에 저항하여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이는 프로테스탄트라는 새로운 종교 분파를 초래했다. 이를 통해 종교란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떠한 사회적 상황에 처해 있는 지에 따라 받아들여지거나 외면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상인들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에 따라 행동했다기보다 거꾸로 자신의 생업이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잘 맞았기 때문에 이를 꾸준히 믿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종교가 필요할까? 현대 사람들에게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의 발달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기계로 대체되어 가고 이에 따라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어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 사람들에게 칼뱅주의는 잘 와 닿지 않는 종교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세계는 자본주의로 돌아가고 있다. 인간이 자본주의 정신을 계속 유지하게 하려면 인간은 기계와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 즉,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직업윤리를 담고 있는 종교가 생긴다면 막스 베버가 말하는 자본주의 정신이 지켜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막스 베버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먼저 ,막스 베버가 한 분야에만 치우치지 않고 경제학, 역사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들에 박식하다는 점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필자의 얘기를 해보자면 이전부터 종교에 관심이 많았지만 종교를 역사 속의 문화 정도로만 생각해 종교를 역사로 연결지어보기만 했었다. 그러나 막스 베버는 여러 학문들에 대한 자신의 풍부한 지식을 활용해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경제와 종교 사이에서 연결 고리를 찾아내어 이를 책으로 써냈다. 앞으로는 다양한 학문들을 접해보고 공부해서 하나에 대해 생각하더라도 한 면만 보는 것이 아닌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를 기존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다는 점도 놀라웠다. 막스 베버 이전에 마르크스가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상업의 발달과 자본의 축적, 잉여노동자의 증가 등으로 자본주의를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마르크스는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것들(하부구조)이 이데올로기와 법과 같은 정신적인 것(상부구조)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막스 베버는 오직 물질적인 것만으로 사회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마르크스를 비판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오히려 거꾸로 상부구조(종교)가 하부구조(경제)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물론 이런 베버의 사상은 마르크스의 이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베버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당한 이윤을 추구하려는 정신적 태도"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럽의 자본주의를 새롭게 정의한다. 이 부분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틀을 깨고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같은 시대가 아니라 조사한 표본이 너무 작다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막스 베버의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