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의 여행』을 읽고 세 번 놀라다
읽을수록 놀라운 이바라기 노리코
처음 이바라기 노리코의 이름을 알게된 것은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우리말로 시를 쓰는 모험을 감행한 사이토 마리코의 『단 하나의 눈송이』를 읽고 나서였다. “시인이 시인이라는 것만으로 학살당했다.” 사이토 마리코의 시 「비 오는 날의 인사」에서 인용한 말이다. 이렇게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한글로 시를 쓸 결심을 하게 된 시인이 존경하는 시인이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싶어서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대체 그 시인은 누구이길래 일본인인데도, 그것도 일본인이라면 가장 우리나라와 감정의 골이 깊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시대에 활동했던, 그리고 그런 비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러 아름다운 시를 써 내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다고 여겨지는 시인인 윤동주의 죽음을 이렇게 애도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겼다.
『한글로의 여행』을 읽으며 이 책에 대해서 세 번 놀랐는데, 처음으로는 이 책이 개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수필처럼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십진분류법에 있어서 문학인 800번대가 아니라 언어에 해당하는 700번대에 위치했다는 것에 놀랐다. 다음에는 이 저자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시기가 가장 우리말(한글)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기 힘들 것 같은 해방 이후라는 것에 놀랐고, 마지막으로는 이 저자가 한글에 대해 가지는 마음가짐이나 그 앎의 깊이가 가볍지 않고 열렬한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낯익음이 생경하고 낯섦에 공감하다
일본 근현대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일본어 공부를 결심하게 된 사람으로서 필자와는 반대로 이바라기 노리코가 한글을 배우면서 느낀 점들은 사뭇 흥미로웠다. 한국에 태어나 그 나라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가장 잘 아는 언어라고 생각했는데도 『한글로의 여행』에서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으로서의 저자가 보는 한글에는 내가 모국어라는 익숙함에 가려져 쉽게 잊고 있었던 면모들도 있어 새삼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를테면 한국어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고 관용적으로 쓰는 속담들도 그 의미를 찬찬히 뜯어보면 처음 생각했던 사람의 기상천외한 창의력이 감탄스럽다는 점이다. 또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한국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북한에서는 국어를 ‘한국어’가 아닌 ‘조선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들었을 때 저절로 공감은 되지만 또 모국어로서는 너무 당연해서 쉽사리 떠올리기는 어려운 이야기들이라, 오히려 한국어를 배워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한 발 물러서서 볼 수 있었던 따뜻한 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필자 역시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또는 일본과 역사적 감정을 떼어놓고는 역사를 설명할 수 없는 한국의 국민으로서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저 한국어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발음이나 그 사람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는 저자의 모습이, 마치 비단 꼭 일본어나 영어뿐만이 아니라 어느 다른 언어든지 넋을 놓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의 방식, 선율, 발음에 마치 음악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내 모습에 겹쳐 보여 공감이 되었다.
또 저자가 한국어를 배운다는 말을 하면 ‘대체 왜 한글을?’이라는 의아한 물음을 받듯이, 필자 또한 일본어를 배운다는 말을 하면, 일본은 상대적으로 선진국이라고 여겨지는 만큼 저자처럼 많이 듣지는 않았겠지만 ‘그런데 왜 일본어를?’이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런 질문들에는 순수한 호기심도 있지만 혹시 일제강점기 때의 아픈 역사는 생각하지 않는 철없는 사대주의적인 가치관이냐, 하고 약간은 질책하는 목소리가 섞여있기도 하다. 그리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일본 문학에 관심이 생겨서’라고 적당히 말을 만들어 대답하는데, 저자가 스스로도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적당히 둘러대며 대답하는 모습 역시 굉장히 동질감이 느껴졌다.
저자가 한글을 배우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은 하나하나 재밌고 인상적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일화는 다쿠 선생의 일화이다. 다쿠 선생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본인도 한글을 배우고 조선의 문화를 배워 조선인처럼 지냈던 한 일본인으로, 다쿠 선생이 교장으로 부임해있던 지역에서는 3‧1운동 날에 일본 군경이 동원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쿠 선생은 우리나라에 이름이 남은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에서 이렇다 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도 아니었다. 저자가 다쿠 선생을 알게 된 것도 같이 한국어를 배우던 친구의 아버지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뿐이었다. 전쟁 전에도 이런 일본인이 있었다.
1) 사이토 마리코, 『단 하나의 눈송이』, 서울: 봄날의 책, 2018, 쪽.
2) 이바라기 노리코,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 서울: 뜨인돌, 2010, 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