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단점아닌 단점이라하면 소크라테스는 늘 이긴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가 항상 제일 똑똑하고 나머지는 항상 틀리는 것으로 귀결되는 게 소크라테스의 논증을 주제로 한 책들의 슬픈 공통점이다.(예외는 없다.) 어쩌면 이 책에서 저자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선생의 역할을 맡은것에 대한 숙명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서 얻는 가장 큰 효용을 논리의 실재와 아름다움이다. 많은 의견들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의 의견으로 동의가 모아질 수 있도록 하는 논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세상이 논리가 전부는 아닐지라도 과거에도 그랬겠지만 특히 오늘 같은 현대의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막연히 네 편 니 편으로 갈라져 싸우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시대이다. 이 때 중간자의 입장에서의 해결로써 소크라테스식의 논증적 해결과 이에 승복하는 양 측의 태도는 어느 정도 분열과 갈등의 사회에 귀감이 될 만하다. 필자는 다음 플라톤의 ‘향연’을의 전반적인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였다.
아폴로도로스는 자신이 아이였을 때, 아가톤이 첫 비극작품으로 우승했을 때인 기원전 416년 이른 봄 있었던 향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는 이 향연에 관한 이야기를 당시 있었던 향연의 참가자 중에 한 사람인 아리스토데모스에게 전해 들었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리스토데모스는 어느날 평소와 달리 말끔한 모습의 소크라테스를 우연히 마주친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자신은 아가톤의 집에서 열리는 만찬에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아리스토데모스에게 참가의사를 물었고 아리스토데모스는 “선생님이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아리스토데모스는 결국 소크라테스와 아가톤의 집에서 열리는 향연에 참가하기로 한다. 에뤽시마코스는 향연의 주제를 에로스에 대한 찬양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동의하고 마침내 파이드로스부터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에로스에 대한 연설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는 가장 오래된 신이라는 점에서 존경받아야 한다고 말하며 찬양을 시작한다. 그는 에로스는 가이아가 "모든 신들 가운데 제일 먼저 에로스를 고안해냈다는" 파르메니데스의 말을 전하며 따라서 가장 오래된 자인 에로스는 좋은 것들의 원인이 되므로 찬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크고 아름다운 일은 "추한 것들에 대해서는 수치심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는 열망을 갖게 하는" 에로스로부터 기원하므로 에로스는 사람들은 에로스적 관계에 있는 존재 앞에서 수치심을 느끼기 두려워하여 덕을 향한 열망을 가진 자로 만드는 존재이다. 그는 이를 신이 어떤 영웅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다" 라고 표현한 호메로스의 말을 인용하며 이것은 에로스에 대한 설명이라고 주장한다. 즉, 에로스는 신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존경받을 만하고 또 살아 있든 죽은 후에든 인간들에게 있어서 덕과 행복을 얻는 일과 관련하여 가장 권위 있는 자"이므로 찬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것이다.
파이드로스의 에로스에 대한 찬양이 끝나자 파우사니아스는 이야기의 방향에 조금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로스에 대한 찬양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어떤 에로스를 찬양해야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우사니아스는 에로스는 하나가 아닌 둘이며 하나는 나이든, 어머니 없는, 우라노스의 딸인 천상의(우라니아) 아프로디테 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젊은,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인 범속의(판데모스) 아프로디테라고 말한다. 그는 이들을 규정하고 그에 걸맞게 찬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위란 그 자체만으로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것이다. 다만 행위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행해지느냐에 따라 그것의 성격이 정해진다.” 따라서 그는 사랑하는 일인 에로스에 대해서 모든 에로스가 찬미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되며 오직 아름답게 사랑하도록 유도하는 에로스만 찬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범속의 에로스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나눠 갖고 있는 쪽 여신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상관없이 행하는 반면, 또 다른 에로스는 남성만을 나눠 갖고 있고, 이는 소년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 에로스는 방자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천상의 에로스이다. 이는 "본성상 더 건장하고 지성을 더 많이 가짐을 특징으로 하여" 남성으로 향하는 에로스이다. 파우사니아스는 찬미의 대상이 되는 에로스의 실현을 위해선 천상의 에로스를 추구해야 하며 범속의 에로스가 좋지 않은 것을 행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범속의 에로스로 인한 좋지 않음을 막기 위한 소년 사랑에 관한 법과 천상의 에로스에 관한 지혜 사랑 및 다른 덕에 관한 법이 "같은 곳에서 함께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덕을 위한 사랑,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며 천상의 에로스다. 이는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덕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게 하므로 국가와 개인에게 모두 이로운 것이 된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에로스는 범속의 여신에 속하는 것들일 뿐 파우사니아니스는 찬미 받아야 할 에로스를 천상의(우라니아) 에로스로 한정한다.
뒤이은 주자인 에뤽시마코스는 일단 "파우사니아스가 에로스를 두 가지로 구분한 것에 대해" 동의를 표한다. 그러나 그는 파우사니아스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의사인 에뤽시마코스는 "에로스는 사람들의 영혼에만, 그리고 아름다운 자들에 대해서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있다는 것" 을 의술로부터 깨달았음을 고백한다. 의술 또한 에로스의 행위인데 몸들은 이중의 에로스를 갖고 있다. 그는 의술은 "각 몸에 속하는 훌륭하고 건강한 것들에게 잘 대해 줄 때" 그리고 나쁘고 병든 것들인 추한 것들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을 때 아름다운 일이 된다고 본다. 마치 파우사니아스가 훌륭한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방종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추한 일이라고 말한 것과 같이. 즉 훌륭한 의사는 에로스에 대해 잘 알고 에로스가 몸 안에서의 아름다운 사랑과 추한 사랑을 구분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주는 자일 때 가장 훌륭한 의사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시가 기술로 확장하여 질서 있는 자들에게 살갑게 대해주고 이들의 에로스를 지켜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천상의 에로스고 천상의 뮤즈 여신에 속하는 에로스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범속의(판데모스) 에로스는 그것의 쾌락은 누리되 방종을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를 요리에 빗대는데, 요리를 통한 쾌락은 누리되 건강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설명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두 에로스 각각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는 두 에로스 간의 절제와 조화가 있는 질서 있는 상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방자함의 에로스가 더 비중을 가지게 될 때 서로를 침해하고 질서의 어지러움이 발생하는데 또한 에로스에 관해서 존중하지 않을 때는 신들에 대한 경건하지 못함을 낳고 이는 혼란이 발생시킨다고 말한다. 에로스 전체로서는 일체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놀라운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것들과 관련하여 절제와 정의를 갖고 일을 이루어내는 에로스야말로 가장 큰 능력"을 갖고 있고 행복을 낳는다고 보았다. 즉 방종이 아닌 온당함과 경건으로 올바른 질서를 낳을 수 있으며 이러한 에로스를 통해 신들과 인간들의 친애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아리스토파네스는 인간의 성이 원래 셋이었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남성과 여성 뿐 아니라 이 둘을 함께 까진 제3의 성 또한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남녀추니라고 한다. 원래 인간은 둥그런 몸과 두 개의 얼굴과 네 개의 팔 그리고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능력이 뛰어났고 자부심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신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제우스는 그들을 둘로 갈라놓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본성이 둘로 잘려 각각은 나머지 반쪽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남-남, 남-여, 여-여의 경우에서 가장 훌륭한 자들은 남-남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이라고 그들은 본성상 가장 용감한 자들이라고 아리스토파네스는 말한다. 이런 온전함에서 갈라져 나와서 그 "온전함에 대한 욕망과 추구가 바로 사랑"(에로스)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인간 종족은 "사랑을 온전히 이루어서 각자가 자기 소년 애인을 만나 옛 본성으로 돌아가게 될 때 행복하게 될 것" 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이 끝나고 향연의 주최자인 아가톤은 연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전의 연설자들이 에로스를 찬양하기보다는 에로스가 인간들에게 준 선물을 찬양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가톤은 먼저 "에로스가 어떤 자인지를 찬양하고, 그 다음에 그가 준 선물들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가톤에 따르면 에로스는 신들 중 가장 행복한데 이유는 그가 가장 훌륭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서 아가톤은 자신은 에로스를 가장 젊은, 그리고 항상 젊은 신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을 덧붙인다. 그는 젊은 뿐만 아니라 부드럽기까지 한데 따라서 에로스는 인간의 단단한 성품이 아니라 무른 성품 속에 자리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에로스는 대상을 휘감기에 유연한 존재이다. 위와 같이 에로스는 젊음과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아우르므로 아름다운 존재라고 아가톤은 설명한다. 그리고 에로스는 덕을 가진 존재이다. 그는 정의롭고 또한 쾌락과 욕망을 지배함으로써 또한 절제가 있다. 또한 에로스는 용기 있는 존재이다. "다른 것들 가운데 가장 용기 있는" 아레스를 지배함으로써 에로스는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용기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에로스는 정의와 절제, 용기를 가진다. 또한 그는 지혜를 가지는데, 에로스는 모든 시가 기술의 창작자임을 들어 설명한다. 에로스가 시가 기술을 주거나 가르치기 때문에 그 자신은 시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이다. 뿐만 아니라 식물을 생산 궁술과 의술과 예언술을 창시한 아폴론 또한 이 신의 제자이며 "뮤즈 여신들은 시가 기술에서, 헤파이토스는 대장장이 기술에서, 아테나는 직조 기술에서, 제우스는 신들과 인간을 조종하는 데서" 에로스의 제자라는 것이다. 즉 에로스가 생기고 나서부터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함으로써 모든 좋은 것들이 신들과 인간들에게 생겨났다고 말하며" 그를 찬양한다.
아가톤의 에로스에 대한 그의 유려한 연설이 끝나자 마침내 소크라테스의 차례가 왔다. 소크라테스는 에로스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아가톤이 에로스가 어떤 자인지를 "먼저 드러내고, 그 다음에 그의 기능들을 다루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를 표한다. 그리고 아가톤에게 무엇은 대상의 그 무엇이라는 류의 질문을 던짐으로서 무엇은 대상의 그 무엇이라는 동의를 이끌어낸다. 따라서 에로스는 그 어느 것에 대한 에로스가 아닌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임을 밝힌다. 또한 에로스는 결여된 상태에서 어떤 것을 욕망하는 것임을 밝힌다. 다시 말해서, 에로스는 "어떤 것들에 대한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그에게 결여한 어떠한 것이며, 우리는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욕망하고 사랑한다. 따라서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결여하고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또한 좋은 것은 또한 아름다움을 함축하는데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므로 좋은 것 또한 아님을 밝힌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와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에로스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서 논의한다. 디오티마는 아름답지 않으면 추한 것이고 좋지 않으면 나쁜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반박한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면 다 추하고 좋지 않은 것이면 다 나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에로스는 그것들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녀는 에로스가 신 또한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에게 신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존재이며 "좋은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소크라테스는 그렇다고 답한다. 그러자 디오티마는 앞서 에로스는 "좋고 아름다운 것들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욕망한다고 동의한 일전의 소크라테스의 말을 상기시켜 마침내 에로스는 신 또한 아님에 대한 동의를 소크라테스로부터 이끌어 낸다. 에로스는 가사자와 불가사자의 사이에 있는 신령 즉 다이몬이라고 디오티마는 말한다. 신령 즉 다이몬은 인간과 신을 잇고 "인간의 것들을 신들에게 신들의 것을 인간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생일날 포로스(방도)와 페니아(곤궁) 사이에서 태어나,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포로스와 페니아의 사이에서 태어난 까닭으로 어머니의 본성인 결핍과 아버지의 본성인 방도로 늘 좋은 것들을 얻을 계책을 꾸미게 된 것이다. "디오티마는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에 관한 사랑(에로스)인데 필연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일 수밖에 없고, 지혜를 사랑하기에 지혜로운 것과 무지한 것 사이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본성상 아버지는 지혜롭고 방도를 잘 갖추고 있지만 어머니는 무지하고 결핍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에로스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에로스를 사랑받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에로스를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로스는 사랑하는 것이라고 디오티마는 말하며 그것에 대해서 덧붙인다. 에로스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것이 되기를 원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행복한 자들은 좋은 것들을 소유함에 의해" 행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사랑한다." 좋은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자신의 손이나 발마저 절단하기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자신들에게 있기를 늘 있기를 소망한다. 따라서 "사랑이란 좋은 것이 자신에게 늘 있음에 대한 것"이라고 디오티마는 말하고 소크라테스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음으로 사랑의 기능에 대해서 디오티마는 말한다. "사랑은 몸에 있어서 그리고 영혼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 안에서 출산하는 것"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 속에서의 낳음과 출산에 대한 것"이라고 디오티마는 말하고 소크라테스는 이에 동의한다. 사랑은 낳음에 대한 것인데 낳음은 가사자에게 있는 영속적이고 불사적인 것으로 이는 가사자 안에 있는 신적인 것이다. 그는 디오티마 이야기를 끝으로 자신의 이야기가 에로스를 향한 찬양이 되었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앞으로도 내내 힘이 닿는 한 에로스의 능력과 용기를 찬미하려한다"고 말한다. 아가톤의 비롯한 향연의 참석자들은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에로스에 대한 이야기에 수긍하는 분위기에 이른다.
이윽고 알키비아데스가 술에 취한 채 도착하고 소크라데스를 보자 과거 자신과 있었던 일과 소크라데스의 비범함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는다. 그 후 밖에 있던 여러 사람이 들어오면서 술을 정신없이 마시는 분위기가 되었고 사람들은 하나 둘 씩 떠나고 향연은 마침내 파장에 이른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뛰어난 논증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이 책을 읽는데 망설여질 수 있다. 내용이 딱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흐름을 꿰지 못하면 이 속에 담긴 참 의미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흐름을 파악하면 소크라테스의 위대한 면모를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아가톤의 집에서 열리는 만찬에서 향연의 참가자들은 술은 각자 알아서 적당히 마시기로 하고 이야기를 통해 서로 교제를 나누는 데 중점을 두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이에 에뤽시마코스는 그토록 오래되고 그토록 위대한 신인 에로스에 대한 시인들의 찬미가가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한 또다른 모임 참가자 파이드로스의 생각을 언급하며 향연의 주제를 에로스에 대한 찬양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향연의 참가자들도 같은 견해일 거라고 말하며 이에 대해 동의하고 마침내 파이드로스부터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에로스에 대한 연설을 시작한다.이 책은 소크라테스식 논증의 구성의 특성상 엄밀한 구조로 짜여진 내용이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읽어서는 이 책의 효용을 얻을 수 없고, 이 책의 전체적인 논리구조를 음미하면서 연속적으로 흐름을 파악하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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