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발견 / 박홍순 지음 / 비아북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37조 1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과 인권에 관해 명시하고 있는 포괄적 기본권 규정인 제10조와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기본권을 보장하는 제37조 만으로도 사실상 국민의 모든 기본권을 보장한다고 볼 수 있다. 평등권, 자유권, 참정권, 교육권 등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에 여타 수많은 기본권이 따로 규정돼 있는 것은 헌법의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서 각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받아 탄생한 결과이다.
기본권은 크게 신체, 종교, 사생활 등을 보장하는 자유권과 사회적 기본권으로 나뉘고 그 외 참정권, 절차적 기본권 등이 있다. 이 중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됨에 따라 자유권에 대한 관심이 나날히 높아졌다. 자유권은 전통적으로 인권, 기본권과 동일시 된 만큼 헌법 상 기본권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헌법 제37조 2항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지만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음을 명시함으로써 우리 헌법이 자유권과 권리를 대단히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자유권 중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바로 신체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신체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서 기본권이 보장될 수 없다. 내가 나의 신체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면 존엄과 행복권의 추구는 먼 세상 이야기 일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제10조에서 규정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합리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부수적으로 신체, 사생활과 통신 등의 자유권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함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에서는 형사소송법의 내용에 해당하는 신체의 자유권 조항을 헌법에 명시해놨는데 이는 우리 헌법이 신체의 자유에 대해 얼마나 중요시하게 생각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헌법 상 신체의 자유권은 국가가 국민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하느냐(범위)보다는 신체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지(방법), 공권력이 어떤 경우에 한하여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지 다룬다. 특히 체포, 구속, 압수, 수색은 한 사람이 일생에 한번 겪을까 말까하는 굉장히 예외적이고 특별하면서 중대한 사건이고 한 사람의 신체적, 정신적 자유를 완전히 박탈해버리는 공권력 행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인신의 제한은 매우 신중히 그리고 보충적으로 행해져야한다. 이것 또한 신체의 자유를 열거한 헌법이 상당부분 형사소송법과 같은 내용인 이유이다.
신체의 자유에 관한 조항은 크게 죄의 유무를 따질 때 고려하는 실체법적인 내용과 구속, 심문, 수사 시 절차와 관련된 절차법적인 내용으로 나눌 수 있다. 실체법적 기본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죄형법정주의이다. 헌법 제13조 1항에 의해 범죄행위 규정과 처벌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그 행위가 있기 전에 법률로 정해져있어야 한다. 이것은 신체의 자유와 밀접하게 관계된 인신의 구속, 형벌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행위가 있고나서 법률이 미비한 것을 알아채고 뒤늦게 처벌 조항을 제정하는 것은 헌법 제13조 2항의 불소급원칙에 의해 인정되지 않는다. 4.19 혁명 후 3.15 부정선거 관련 반민주 행위자의 처벌을 위해 관련법을 소급 적용하기 위한 헌법 부칙 개정(4차 개헌)과 같이, 헌법을 고치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 죄형법정주의가 중요한 이유는 법적안정성의 지향이다. 어떤 행동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국민들이 미리 인지하고 있어야 인신의 구속이나 처벌이 내려져도 수긍할 수 있는 법적 질서가 유지된다.
절차법적 신체의 자유권으로 적법절차의 원리가 있다. 헌법 제12조 1항에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라고 규정하여 신체적 자유권을 직접 명시하고, 그것에 제한을 가할 때는 모든 국가권력이 귀속되는 법률적 근거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이 글의 주제인 신체적 자유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조문이라고 생각한다. 제12조 3항에서도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여 2항과 함께 국민의 신체적 자유를 구속하려면 반드시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함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더하여, 헌법 제12조 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진술거부권과 고문금지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제12조 7항 또한 비인권적인 방법으로 수사할 시 그로 인한 자백은 증거로 채택되지 않거나 피고인을 처벌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들 조항은 유신시대와 군부독재를 거치며 처참히 짓밟힌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신체의 자유에 관한 구체적인 개별사항이다.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기술자 이근안, 부천경살서성고문사건, 박종철고문치사사건. 단어만 들어도 불과 30년 전에 이 땅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과 그 때의 시대상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시절, 경찰과 검찰 뿐만 아니라 군 수사기관 등에서 수사 시 고문은 가장 흔하게 자행되던 수사기법이었다. 폭력과 협박으로 거짓자백을 이끌어내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또한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고문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비상계엄에 온 나라가 덜덜 떨었던 시절, 길거리에서 인정사정없는 군인들에 의해 개처럼 맞는 ‘무차별 고문’, ‘무차별 인격파괴’는 수시로 자행됐다. 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진정한 민주주의로의 첫 발걸음을 뗀 대한민국의 헌법은 치욕스러운 과거를 씻고 인간의 존엄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헌법 12조 5항은 체포 또는 구속 시 고지, 통지제도이다. 과거 유신정부와 군부독재에 저항하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민주열사들이 많았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서는 정신을 잃거나 사지가 훼손돼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가족, 친지들은 생사도 모른 채 밤을 세워가며 실종된 희생자들을 기다려야 했다. 또한 경찰관직무집행법의 불심검문제도를 악용해 국민의 신체적 자유를 위법하게 침해해왔다. 그러나 이 땅에 민주주의가 들어서고 인권의식이 사회 기저에 깔리면서 영장주의와 미란다 원칙 고지 등과 같은 합법적 절차를 필수로 요하는 제도가 자리 잡았다. 멋있는 배우가 형사로 나오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범인을 체포하면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참혹한 현대사를 겪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어느 드라마나 영화보다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과거 국민의 자유권에 대한 제한과 침해가 매우 심했기 때문에 87년 이후 민주헌법을 제정하면서 신체의 자유와 관련된 내용을 헌법에 명시해 최고의 규범성을 부여했다. 헌법 제12조, 제13조, 제27조, 제28조 등의 조문들이 함께 어우러져 신체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체계를 완성했다. 더하여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형사소송법과 같은 하위법률들이 제정됐다.
이렇듯 우리 헌법에는 형사소송법으로 봐도 손색없는 조문들이 있다. 형사소송법상의 권리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민주열사들이 몸 바쳐 만들어 낸 87년 헌법체제에서 신체의 자유권이 제대로 보장받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헌법상 보장된 자유권은 여전히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과 같은 '말할' 자유는 언론과 학계의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을 통해 크게 개선됐지만, '말하지 않을' 자유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TV 뉴스를 통해 항상 범죄소식을 접할 수 있다. 회사 돈을 횡령한 고위임원, 패싸움에 가담한 조직폭력배부터 마약투여 혐의로 구속된 영화배우까지. 우리가 접하는 뉴스는 대게 이렇게 전개된다. 사건현장을 담은 영상과 목격자, 담당 형사의 인터뷰를 보여준 뒤 형사 앞에 앉아 수건을 뒤집어 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스크와 수건 등으로 가린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기자는 피의자에게 현재의 심정이나 범행동기를 물어본다. 피의자가 다수일 때는 호송줄에 묶인 피의자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기자들은 그들 앞에서 연신 카메라 플래쉬를 터트린다. 경찰서 앞에서 형사들에 의해 팔이 묶인 피의자가 마치 시상식 포토라인 앞의 영화배우처럼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기도 한다. 사실 이런 영상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연신 욕을 내뱉으며 저런 놈은 천벌을 받아야 된다며 울분을 터트린다. 그렇게 체포된 피의자는 그 순간 언론에 의해 유죄를 판정받은 범죄자가 된다. 우리나라는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피의자'에 대한 사회적 개념이 모호하다. 피의자와 피고인에 대해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일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면 범인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헌법 제27조 4항에서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며 명확히 '무죄의 추정'을 명시하고 있다. 누구라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경찰에 의해 체포, 구속됐다고 해도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일반인과 같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시민이다. 그런데 기소는 커녕 이제 막 경찰에 붙잡힌 피의자들은 수사기관과 언론에 의해 수건을 뒤집어쓰고 뉴스에 노출되면서 범인임이 기정사실화된다. 기자는 뉴스에 내보낼 영상이 필요하고 이왕이면 자극적이면서 시청자의 가려움을 긁어줄 거리가 필요하다. 경찰은 자신들의 업적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다. 이 두 집단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순간 헌법에 명시된 자유권과 인권은 자취를 감춘다. 진술을 할 권리도, 헌법 제12조 2항의 진술을 거부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무죄 추정의 원칙' 보다는 '유죄 추정의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뉴스에 노출된 피의자는 그 순간 사회적으로 범인으로 매몰되고 나중에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 해도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이미 범죄자로 각인돼있다. 구속된 피고인이 재판장에 나설 때 수의를 입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1999년 헌법재판소 결정도 무죄 추정의 원칙에서 나왔다. 유죄 판결을 확정 받지 않은 피의자라도 수의를 입고 나서는 모습을 보면 범죄자와 같은 인상을 남기고 수의를 입은 피고인도 위축된다. 하지만 이 같은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에도 대부분의 구속된 피고인들은 수의를 입고 공판장에 나선다. 교도소장이 사복을 입을 수 있는 권리를 알려줄 의무는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스를 유심히 보면 권력비리를 저지른 고위 공무원이나 재벌총수 등 사회 고위층들은 말끔한 양복을 입고 재판장에 서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찰서 앞에서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지 않을 권리, 공판장에서 사복을 입을 권리는 아직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권리이다. ‘무죄추정의 원리’가 무너진 순간, 신체의 자유권은 보장받지 못한다. 나의 신체를 보호할 권리는 ‘유죄추정의 원칙’앞에서 무너진다. 나는 앞으로 수사 받을 일도 없고, 재판장에 설 일도 없다고 그저 치부하기엔 너무 중요한 기본권이다. 내가 행사할 필요가 없는 권리일수도 있지만 사실 필요 없는 권리는 없다. 이렇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알고 행사할 때,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서 조금씩 사회가 변화할 때, 우리가 놓치고 있던 다른 기본권도 되찾아 올수 있다. 꽁꽁 숨겨져 아는 사람만 독점하는 권리를 이제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법치국가에 살고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법치국가의 개념을 '법으로 국민을 다스리는 국가'라고 알고 있는 경우를 꽤 볼 수 있는데, 우리가 법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 수 있다. 법치국가는 통치자와 권력자가 법의 통제 하에 운영하는 국가를 말한다. 법은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정부와 권력자가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제한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대표적이고 강력한 도구가 바로 최상위의 법규범인 헌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헌법을 중시해야 한다. 헌법을 무시하고 그 위에 초헌법적인 존재로 군림하려는 권력자는 즉각 물러나야 한다. 건국 이후 그런 독재자들이 오랫동안 이 나라를 지배했지만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고자 했던 용감한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금의 민주국가가 탄생했다. 우리는 과거의 비극적인 현대사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유린하고 무시하며 공권력과 권한을 악용해 국민을 우롱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헌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헌법을 알아야 한다. 비참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국민들이 헌법에 명시된 권력자의 제한된 권한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권력자들도 국민 앞에 함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있다. 헌법을 비롯한 법률들은 비전문가, 일반인이 접하기엔 너무 어렵다. 가볍게 공부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한문으로 범벅된 법조문은 읽어내기조차 쉽지 않고 그렇다고 한글로 써놓아도 이해하고 해석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수 십 년 전부터 사법시험을 통해 유능한 법조인을 선발해왔다. 그들의 역할은 바로 국민과 법률을 하나로 이어 주는 것이다. 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권위 있는 헌법과 하위법률의 권력 통제 기능이 잘 작동돼야하는 책임이 법조인에게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대한민국의 법률가들은 그 역할을 저버리고 권력의 하수인 행세를 하며 온갖 비리와 부패의 연결고리에 포함돼 있었다. 법률적 지식을 독점한 그들은 스스로 권력자가 되었다. 달콤한 권력의 맛을 독차지 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일반인과 법 사이의 진입장벽을 더 높게 쌓아올렸다. 사법연수원이란 성분으로 일원화된 법조인들이 법원, 검찰, 변호사와 교수로서 서로를 예우하고, 해서는 안 되는 배려와 관용을 일삼았다. 법률적 지식을 무기로 법으로부터 일반국민들을 떨어뜨려 놓고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왔다. 그래서 법의 테두리 밖에 놓인 국민들은 더 이상 우리나라 법조계를 신뢰하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발생한 그랜저검사, 떡값검사, 벤츠여검사 사건에 이어 최근 진경준 검사장 사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사건 수사행태 등을 접하며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사법시험 폐지가 결정되고 생긴 로스쿨 출신의 검사가 피고인에게 성상납을 받은 사건을 접하고 꼭 일원화된 출신성분 때문만이 아니라 법조계에 만연히 깔린 저급한 권위의식과 권력욕이 그들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국민들은 법이란 것은 그저 그들만의 것이라고 치부하고 법 없이도 착하게 사는 게 장땡이라며 스스로를 법률과 멀리했다. 이런 현실이 고착화되고 결국 법률가와 비법률가의 장벽은 너무나 높아져버렸다. 국민들은 법률가를 믿지 못하고 법조인은 국민들을 무시한다. 법률적 해석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에서 법률가들은 "법도 모르면 조용히 하라"는 한마디로 국민들의 비판을 잠재운다. 수임료를 지불하고 법률서비스를 받고자 한 소비자에게 공급자인 변호사가 오히려 의기양양 소리를 치며 면박을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상 그들은 권력을 견제해야하는 도구인 법을 이용해 권력자가 됐다. 그 카르텔을 깨고자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수 십 년 동안 이어온 그들의 동맹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법조계와 권력자들의 머리 속에 뿌리 깊게 박힌 헌법 정신은 '그러나'이다. 기본권에 대해서는 온갖 정당하고 정의로운 말을 써놓고,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를 사용한 언변으로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려하지만, 사실 그 뒤에 붙일 권리가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 것에 더 고민한다. 헌법은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기본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인정하지만, 그러나'의 논리로 헌법을 해석하면 권력자들은 언제라도 헌법을 자신의 입맛대로 내놓을 수 있다. 실제 그런 권력자들이 수도 없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헌법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기본권, 존엄과 가치, 자유권은 항상 보장돼야 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이 땅에서 시작된 급속한 경제성장은 여타 정치적 과오를 묵살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수많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만 입을 틀어 막고 숨죽일 수 밖에 없었다. 헌법 위에 있는 독재자가 두려웠고, 내 자식과 가족을 위해 한시라도 더 일을 해야 했다. 덕분에 우리 세대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경제대국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됐다.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고 부모님 세대처럼 굶주리며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민주주의는 제법 뿌리 내렸고 국민의식도 매우 성숙하게 발전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민의 권리를 회복하고 헌법의 가치를 바로잡을 차례이다. 헌법에는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조문이 없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유독 지켜지지 않고 무시 받는 헌법정신이 바로 자유권이다. 특히 군부독재시절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과 독재를 위한 국가통제 과정에서 바로 신체의 자유정신이 탄압받았고 그 상처는 아직도 완치되지 않았다. 올바른 헌법정신을 세우기 위한 첫 발걸음은 '말할' 자유 뿐만 아니라 '말하지 않을' 자유, 나의 신체를 주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운영할 권리와 그 밖에 헌법이 보장하는 범위 안에서 자유로울 권리를 찾는 것이다. 스스로 멀어진 헌법과 법률에 국민들 스스로 다시 다가가야 한다. 매체가 발달하고 전문가들이 일반인들과 가까워지면서 이제 접하지 못할 분야가 거의 없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규범, 우리의 권리에 대해 명시하고 있는 헌법과 친숙해지고, 그 헌법을 무기로 권력자들과 법조인들에 대항해야 한다.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올바른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과거 용감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것처럼, 그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다를 지라고 국민의 목소리를 모아서 인간의 기본권과 신체의 자유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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