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는 존재해왔고, 존재해야하며, 존재할 것이다.
Ⅰ. 서론
1. 인간과 무기체 알고리즘 구분의 필요성
지난 몇 세기 동안, 높은 지능이나 유연한 협동 능력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로서 강조 되어 왔다.1) 그러나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들은 더 이상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 될 수 없게 되었다. 알파고의 등장으로 인간은 더 이상 지능으로는 인공지능과 그 자손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습 알고리즘 입력은 인공지능에게 사람만의 영역이라고 생각되어 왔던 학습 능력, 소위 ‘딥 러닝(Deep Learning)’이라고 불리는 자체적인 학습 능력을 부여하는 충분조건이 되었다. 높은 지능을 가진 알고리즘이 머지않아 협동 능력에도 손을 뻗칠 가능성 역시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인공지능이 점차 인간의 여러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드러나는 현실 속에서, 이들에게는 없는 인간만이 지닌 가치의 필요성이 대두하였다.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무기체 알고리즘2)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결정적이고 중요한 차이를 찾아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Ⅱ. 본론
2. 자유의지 실재론 vs. 허구론
자유의지는 현재 형이상학과 윤리학에서 논쟁거리인 개념 중 하나로, 오늘날 최종적으로는 외부로부터 구속당하거나 강제당하는 것 없이 어떤 목적을 스스로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의지로 정의할 수 있다3). 시대에 따라 자유의지의 내용은 그 내용이 조금씩 변화했지만, 근대의 유심론(唯心論)은 특별히 이러한 자유의지를 정신이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의지4)라고 정의하였다. 유심론에 포함되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그리스도교5)는 대표적인 자유의지 실재론으로, 오늘날 사용되는 ‘자유의지’ 개념의 근간을 이루기도 한다. 반면 유심론과 대립되는 유물론(唯物論)의 경우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설령 자유의지가 존재하더라도 어떤 법칙성에 따를 뿐이라고 본다. 그런데 유물론 역시 의식이나 마음처럼 무기체 알고리즘과 유기체 알고리즘을 구분 지을 어떠한 추상적인 요소가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6). 즉 자유의지의 실재 여부에 대해서는 조금씩 대립이 있긴 해도 인간만의 고유성,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것에는 두 입장 공통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이다.
3. 자유의지는 환상이 아니다 – 추상적 가치의 필요성
하지만 자유의지 허구론자들 역시 자유의지가 환상이라고 볼지언정 인간이 미래에 오히려 절실히 그 환상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인정한다7). 그런데 자유의지는 단순한 환상이라기보다는 허구적인 실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추상적인 존재일지는 모르나 점차 인간을 닮아가는 무기체 알고리즘으로부터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유의지의 필요는 절실하다. 또한 그 의의와 필요성이 확실하다면, 허구처럼 보이는 자유의지는 마치 실재와 같이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렇게 지속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자유의지를 환상일 뿐이라고만 해야 할까? ‘자유의지는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존재하므로 허구’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추상적 개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반박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수(數)는 분명 그 실체도 없고 그야말로 단순한 하나의 약속일뿐이지만 오늘날 널리 통용되고 있고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필요가 확실하고 또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 역시 이와 유사하다. 무기체 알고리즘과의 차별화를 위해 자유의지는 필요하고, 또 이를 대체할 만한 것은 찾기 쉽지 않다. 전통적으로 자유의지는 도덕적 책임의 선행조건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8). 이는 뒤에 소개할 무인 자동차 딜레마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결론적으로 자유의지의 필요성은 필연적으로 유지될 것이고 또한 자유의지를 불멸하게 할 것이다.
4. 도덕적 책임의 근거, 자유의지 – 무인 자동차 딜레마
조만간 알고리즘으로 나타나게 될 유명한 윤리적 딜레마, 무인자동차 딜레마는 도덕적 책임을 수반하는 자유의지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자율주행 자동차(무인 자동차)를 운전하는 도중 갑자기 10명이 도로로 뛰어들었는데, 정지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충돌을 피하려고 방향을 왼쪽으로 틀면 벽을 들이받아 탑승자가 사망, 오른쪽으로 틀면 다른 보행자 1명을 치는 상황이다. 자동차 제조사는 이런 경우 무인차가 어떤 판단을 내리도록 설계해야 하며, 만약 사고가 나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9) 결론이 어떻게 나든, 무기체 알고리즘에 책임을 묻자고 주장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책임은 결국 인간의 영역이지, 무기체 알고리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무기체 알고리즘은 인간과 달리 ‘도덕적으로 무능’10)하다. 물론 무기체 알고리즘은 폐기됨으로써 나름의 방식으로 그 책임을 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고장 난 기계를 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알고리즘 폐기만으로 사건은 종결되지 못할 것이고, 하다못해 그 알고리즘을 설계한 프로그래머에게라도 책임이 돌아갈 것이다. 결국 자유의지를 지닌 ‘사람’에게 책임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Ⅲ. 결론
5. 현대‧미래적 가치로서 자유의지 – 인간 고유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
인간은 알고리즘의 한 형태이지만, 무기체 알고리즘과는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며, 존재해야 한다. 이것은 증명의 영역을 넘어선 필요의 영역이다. 인간은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지킬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는 인간이 고유하고 독자적인 주체로서 존재하도록 하는 가치를 찾기 위한 노력이다. 이에 따르면 마치 자유의지는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가치, 인류가 계속해서 문명을 지속하기 위해 존재하는 환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자유의지의 가치를 불멸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따라서 인간 고유성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자유의지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그것이 설령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할 것이다. 오랜 시간 축적해온 문명 속에서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윤리, 제도, 법, 종교의 대부분은 자유의지의 개념에 의존한다. 결론적으로 자유의지는 그 역사적 가치에 필요성이 더해져 미래에도 그 가치가 지속될 것이다. 자유의지의 첫 등장 계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였으나 미래에는 인간만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 될 것이다.
1) 유발 하라리, 김명주, 『호모 데우스』, 파주: 김영사, 2017, 188쪽.
2) 흔히 인공지능이라고 생각되는 AI의 작동원리, 생물이 아닌 것의 알고리즘을 통칭한다. 인간 역시 ‘유기체’라는 점만 제외하면 알고리즘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은 최근 지속적으로 확인되어 왔다. 유기체 알고리즘인 인간과의 차이는 ‘생명’뿐인 무기체 알고리즘을 지칭하고자 사용한 단어이다.
3) 국립 국어원, “자유의지 「4」”, <표준국어대사전>, 2017.12.01.(http://stdweb2.korean.go.kr/).
4) 위와 같음, “자유의지 「5」”.
5) 그리스도교는 창조주나 천사를 피조물을 초월한 존재로서 인정한다는 점에서 유심론으로 분류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같은 맥락이다.
6) 프란츠 M. 부케티츠, 원석영,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 서율: 열음사, 2009, 208-209쪽.
7) 앞의 책, 프란츠 M. 부케티츠, 211쪽.
8) 줄리언 바지니, 서민아, 『자유의지-자유의 가능성 탐구』, 파주: 스위앤드, 2017, 175쪽.
9) 박건형, “로봇·무인차에게 묻는다… "너의 정의는 무엇이냐?", <ChosunBiz>,
2015. 10. 30.(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04/2016030400651.html, 2017. 12. 02.).
10) R.C. 스프로울, 김태곤, 『자유의지 논쟁』,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5, 2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