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래서 영화 중에서도 SF영화, 소설 중에서는 판타지 소설, 작품마다 고유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만화 등을 읽으며 상상력을 기르는 것을 즐겨한다. 판타지 소설 중에서는 특히 반지의 제왕을 가장 좋아하는데, 반지의 제왕 영화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못해도 6~7번은 봤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모든 1, 2, 3 모두를 각각 6~7번이다. 입대하기 전에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정주행했고 입대하고 나서는 반지의 제왕의 이전 이야기와 중간계 세계관을 다룬 책인 실마릴리온을 2회독 하였을 정도로 반지의 제왕을 좋아한다고 자부한다. 그래서인지 복학하고 나서 도서관에서 '후린의 아이들'이 한눈에 들어온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후린의 아이들은 반지의 제왕 이야기보다 6500년 전의 내용을 다룬다. 물론 6500년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세계관인 중간계 시간대로 계산한 시간이다. 사실 반지의 제왕은 J.R.R 톨킨이 창조해낸 세계관의 끝자락 쯤에 위치한 내용이고 J.R.R 톨킨이 창조해낸 세계관을 보다 정확히 알고 싶으면 실마릴리온을 읽어야 한다. 실마릴리온은 중간계가 형성된 태초의 시간부터 다룬 내용인데, 그 내용을 간략히 짚고 넘어가자면 유일신 일루바타르 휘하의 여러 발라들이 중간계의 질서를 만들어나갔고 그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마이아들과 여러 종족들을 살게 하였는데, 악의 축인 모르고스가 중간계를 지배하려고 하고 그에 맞서는 여러 종족들 간의 혈투를 이야기 한 내용이다. 흥미 위주로 쓰인 내용도 아니고 문체도 건조하여 톨킨의 작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쉽게 읽히진 않는다.
반면에 후린의 아이들은 J.R.R. 톨킨이 1920년대를 전후로 심혈을 기울여 쓴 내용을 그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이 엮은 책으로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언어학자였던 J.R.R 톨킨은 고대 영시의 형식을 지키면서 2천 행을 넘겨서 쓴 대서사시이다. 과도한 규모로 구성하여 서사가 나르고스론드에 대한 용의 공격에 이르렀을 때까지만 진행되고, 나머지 부분은 <잃어버린 이야기들>에서 수록된 이야기를 크리스토퍼 톨킨이 엮어내었다.
'후린의 아이들'은 요정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인간왕 후린과 그의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모르고스의 오크들과의 전투에서 패한 후린은 포로로 잡혀가고 그가 다스리던 땅 도르로민은 폐허가 된다. 후린의 아내 모르웬은 아들 투린만큼은 폐허가 될 땅에서 구하고자 요정왕 싱골에게로 보낸다. 그곳에서 요정들과 함께 성장한 투린은 건장한 청년이 되어 아버지와 도르로민 백성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싱골왕에게서 독립하고 여러 요정들과 인간들의 도움을 받으며 복수를 하기 위한 힘을 키워 나간다. 그런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는데, 난쟁이 종족에게 배신도 당하고, 자신을 시기하던 요정을 죽이기도 했다. 투린은 사악한 용 글라우룽과 조우하게 되고, 글라우룽은 이런 투린의 운명과 투린의 어머니 모르웬과 여동생 니에노르를 조롱한다. 투린은 모르고스에게 복수를 하기엔 한계를 깨닫고 모르고스와 한편인 글라우룽에게 죽음을 각오한 복수를 다짐한다. 글라우룽은 니에노르의 기억을 지우고 겉모습도 바꾸어 버리고 니에노르를 풀어준다. 애석하게도 니에노르는 투린에게 구출되는데, 니에노르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던 투린은 니에노르를 니니엘이라 부르고 간호하며 말을 가르친다. 결국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니에노르는 임신을 하게 된다.
투린은 글라우룽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글라우룽의 피에 중독되어 혼수상태에 빠지고, 니에노르는 쓰러진 글라우룽 옆에 있던 투린을 발견한다. 죽어가던 글라우룽은 니에노르의 기억을 다시 찾아주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니에노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투린도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자살로 마감한다. 그리고 모르고스는 후린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자 해방시켜 가족을 찾아가게 만든다. 투린과 니에노르의 묘지에서 자신의 아내 모르웬을 발견하였으나 이내 모르웬도 마지막 숨을 내쉬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악한 용 글라우룽을 처치한 영웅 투린의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수록된 에피소드 면면을 보자면 비극적인 내용이 더 크다. 글라우룽과의 전투는 검으로 찌른 것으로 묘사한 게 전부이지만 투린 일가의 비극은 책 전체에 드러난다.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복수를 다짐했던 투린은 글라우룽만큼은 죽이겠다고 다짐한다. 안타깝게도 모르고스에게 붙잡힌 아버지 후린을 구출하지 못했고, 자기가 지키고 싶어했던 어머니와 여동생 또한 지키지 못했다. 복수에만 눈이 멀어 초래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투린은 수려한 외모 때문에 많은 여심을 훔쳤는데 요정왕 오로드레스의 딸 핀두일라스, 니니엘의 마음을 얻으면서 그녀들을 사랑했던 귄도르, 브란디르 등 남자들과 갈등이 생겼다. 어딜가나 삼각관계 만큼 갈등을 이끌어내기 좋은 소재는 없는 모양이다.
방대한 세계관을 창조해낸 톨킨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나도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은퇴하고 소소하게 나의 세계관을 그려내는 것이 목표다. 나는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공학도이지만 나의 상상력이 소멸되지 않고 더 커졌으면 좋겠다. 나에게 톨킨의 작품은 내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시켜 줄 좋은 소재이다. 톨킨의 작품을 입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지의 제왕 영화를 보고 후린의 아이들을 읽고 실마릴리온을 읽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