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겉으로는 정의, 공평함을 원하면서 동시에 부조리와 불공평함의
극치인 세상 속에 살고있다. 지구의 한 쪽에서는 필요 이상의 음식을 섭취하며 다이어트에 돈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또 다른 한 편에는 영양실조로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힘겨운 사람들이 있다. 인종차별, 빈곤퇴치 등을 위해 힘쓰면서 당장 갈 곳 없는 난민들에게는 등을 돌리는,
참 모순적인 인생들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전지전능하고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는 신이 있다면, 어째서 사람들은 굶어죽어가는 것이며, 어떤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것이며, 아무 죄 없는 태아들이 어째서 세상을 빛을 본 지 며칠만에 어머니의 품을 떠나야먄 하는가. 어째서 세상은 이리 불공평한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 학교 목사님과, 그리고 학교 교감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목사님께서는 인간이 선대에 지은 죄 때문에 그 자손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언젠가 올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고, 이 중 희생되는
영혼은 불가피하다는 말씀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죄인의 아들 또한 죄인으로 치부해버리는 것과 같은 무시무시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목사님께는 나의 그 생각이 건방지고 무지한 지적으로 들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설명을 듣고 나서,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세상이 한 층 더 불합리해
보였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목사님께서 믿으시는 그 “구원의
손길"이 어째서 모두에게 똑같이 닿지 못 하는지, 참 불공평한 사회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나 또한 위선자이다. 나 또한 이런 “불편한
진실”을 망각하며 살아간다. 나를 포함한 대중은 이 불편한
진실은 굳이 들추어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사소한 일에 열을 올리는 모순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중 몇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진실을 마주한 그들은 더 나은, 더 공평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위해 행동한다. 그들이 속해있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계에서 기꺼이 벗어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세상의 영웅이 아닌가.
히말라야, 네팔에서
학교, 도서관을 짓고 있는 존 우드 또한 그들 중 한 명이다.
존
우드는 능력있는 직장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고액연봉을 받으며, 시애틀에서
성공적인 커리어 경험을 쌓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돌연, 그의
안정된 직장, 보장된 미래, 그리고 사랑까지 포기하고 네팔로
떠난다. 수 년 전, 히말라야 산맥의 한 학교와 한 약속
때문이었다. 한 학교를 시작으로 그는 “룸 투 리드” 라는 신생집단을 설립, 운영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는 네팔, 그 높고 추운
히말라야 산맥의 아이들에게 ‘희망’ 그 자체이다. 정식 교육과정을 거치지 못 하고, 더 나은 삶을 꿈 꿀 수 없었던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는
세상의 부조리를 보았으며, 그와 직면했다. 그의 용기와 결단력이
정말 부럽다. 이 시대에는 세상을 바꾸는 인물, 즉 체인지 메이커스가
새로운 인재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능력, 쟁쟁한 학벌 또한 중요하겠지만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을 걸고 세상을 바꾸는 용기가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생각에 그치고 마는 소심한 나는 이대로 결국 그 흔한 사람들 중 한명이 되어 그저그런 삶을 살다 가는 것일까 나는 그 험난한 히말라야 산맥을 기꺼이 오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