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에서는, 보편적인 기준에서, 사회가 분명하게 잘못되었고, 주인공이 거기에 맞서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악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1984의 정부는 사람들의 정보를 모을 뿐 만 아니라, 과거를 수정하고 ‘프롤레타리아’(시민)들을 세뇌시키고 식량배급도 제대로 안 해주는 등 디스토피아의 면모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 노골적인 것이 텔레스크린이지만, 그것 외에도 ‘부정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과거를 고치는 것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의 폭을 점점 줄이는 것이다. ‘과거를 고친다는 것’은 웬만한 인력과 엄중한 보안, 그리고 시민들의 철저한 세뇌가 없으면 안 된다. 전쟁 상대가 바뀌자, 처음부터 그 상대와 계속 전쟁을 해왔던 척을 하며 적개심을 순식간에 돌려버리는 시민들을 보면 잘 드러난다. 일시에 모든 문서가 수정되고, 길거리에 걸린 전단지부터 사람들의 인식까지 한꺼번에 바뀌어버린다. 영사(1984에서 나오는 정부의 이름)는 또한 ‘신어’를 만들면서 사람들의 사고의 폭도 좁힌다. 반의어를 없애고 원래 단어를 부정형으로 만들어서 쓰는 것이다. 처음에는 편하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의 사고를 서서히 획일화시키는 무서운 방식이다. 이 예시는 윈스턴의 친구이자 신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사임’이 지적했던 부분이다- ‘사상’이란 말은 ‘사회, 정치, 인생 등에 대한 일정한 견해나 생각이나 사고 작용의 결과로 얻어진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의식 내용’을 이른다. 그러므로 ‘사상’의 반의어 급인 ‘반사회적인 생각’같은 단어들은 없어지고, 결국에는 ‘사상’은 곧 ‘생각’을 의미할 것이며, 그에 대한 반의어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내게 의미가 깊을 정도로 인상적인 책이다. 강렬한 여운이 남았다. 1984는 1940년대에 쓰인 책인데, 40년 후의 생활이 이럴 것이라는 작가의 추측이 제목에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묘사하는 현실은 21세기인 지금과 놀랄 정도로 흡사하다. 우리는 일반 시민이기 때문에 우리의 개인정보를 정부가 어느 정도로 수집하고 있는지 모른다. 주민등록증이나 학력, 호적, 이런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전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다. 페이스북의 기술 중 하나에는 '딥페이스'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엄청난 데이터베이스를 가진 기계가 사진에 있는 사람들을 고도의 안면인식기술로 누구인지 알아내는 기술이다. 페이스북의 기본 기능만 봐도 개인의 이름, 거주지, 종교, 정치적 성향, 학교, 심지어 몇 분 전에 활동을 했는지까지 알 수 있다. 비록 비활성화로 고친다고 해도, 그게 과연 ‘나만’ 볼 수 있는 것일까? 좋은 기술로 인터넷을 뒤지면 전부 나올 정보이다. 삭제한 사진들도 기록에 다 저장되어있다. 항목들을 안 적고 비운다고 해도, 비활성화 기능은 그냥 안 적는 것만 못한 것이다. 신문에서 본 것에 따르면,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른 것들을 분석하면 성적 취향을 포함한 개인 취향 등의 정보를 더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요즘 CSI는 페이스북에서 정보를 수집한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조지 오웰이 <1984>에서 텔레스크린으로, 사상경찰로 경고했던 부분이 아닌가. 현대 사람들은 공유하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물론 나도 내 생활을 하면서 공유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 그러나 내 일거수일투족을 CSI나 내가 모르는 대한민국의 비밀기관에게 직접 밝혀주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불평을 늘어놓는다고 지금 상태를 과거로 돌릴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다가올 것에 꾸역꾸역 따라가 보려고 한다. 그래도 윈스턴이 소심하게 반항했던 것처럼, 종이에 연필로 직접 편지를 쓰는 기분이나,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책을 읽는 기분, 사라지는 단어들을 쓰는 기분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개인 정보 노출이 싫어’ 라는 단순한 관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1984 안에서 내가 일반 프롤레타리아로 사는 건 확실히 싫다. 그러나 내가 그 당의 1인자 (아니면 난 적극적인 리더형 인간과는 좀 거리가 있기 때문에) 2인자라면? 내가 진실을 알지만 과거를 고치고, 모든 사람의 사고를 조정하며 감시할 수 있다면? 절대 이 정치체제를 찬양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획일화와 전체주의, 허상만 있고 명분이 없는 권위의 지배에 따르는 걸 정말 싫어하는 내가, 사람의 사고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은근히 즐기는 것이다. 나는 언어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에 열광하고, 정보를 모아서 사람들을 ‘안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완벽히 뒷받침하는 1984의 튼튼한 (픽션이지만) 역사적 논리...! 아주 가슴이 뛴다. 그리고 나서 접한 것이 빅데이터라는 개념이다. 알고 보니 1984랑 연결되어있었다. 대학에 와서도 이 관심은 쭉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을 안 읽었으면 (단순히 영어책 읽는 걸 좋아해서) 영어영문학이나 (짧은 심리학 상식 토막글이 마음에 들어서 성급하게 관심이 있다고 결론지은) 심리학에 만족할 뻔 했다. 참고로 같은 작가가 쓴 <동물농장>과 알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같이 읽으면 좋다. 개인적으로 <동물농장>의 해설을 읽고 소름이 끊이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