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흥미로운 주제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강렬한 필력이 일품인 작가이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모든 주인공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나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고, 신작을 내는 족족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게 만드는 하나의 열성 독자를 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소설, <28>은 정유정 작가의 소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영화로 제작된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과 같은 소설들도 재미있지만, 이 소설은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소설의 큰 내용은 동물에 의해 옮겨진 전염병으로 한 도시가 무너지고 그 지옥 같은 도시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버티는 여덟 인물의 28일 간의 생존기이다. 나는 본가에서 다섯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정확히는 일곱 살 때부터 약 15년 간 반려견이 없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고, 동물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담론에 상당히 예민한 편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나에게 와닿는 점도, 느끼게 해주는 점도 많았다. 특이하게도 소설의 중심인물 8인 중 하나가 그 전염병에 노출된 ‘강아지’로 등장한다.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큰 소재는 '인수공통전염병'이다. 그리고 도시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병을 옮겼다고 추측되는 유기견 집단에 큰 분노를 느끼며 생매장과 학살을 자행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주인공인 동물병원 의사 서재형은 갈등한다. 상당히 흥미롭고 나같은 애견인에게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임이 분명했다. 소설을 읽으며 수많은 생각을 했고, 나는 세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인간의 악마성은 타고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다. 소설 속 인물인 ‘동해’를 보며, 꼭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인간의 악마성과 이기심은 극한의 상황에서 더 잘 발현된다고 한다. 소설 속 도시의 상황은 그 극한의 절정이었고, 살아남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잔인하고 이기적인 행동들을 거리낌 없이 하곤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차갑고 잔혹한, 정말 ‘악마’를 연상시키는 인물이 바로 동해였다. 그를 바라보며 들었던 생각이 ‘과연 동해는 태어날 때부터 저런 기질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를 억압하고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던 걸까.’ 라는 것이다.
둘째,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다. 병이 화성시에서 다른 도시로 점점 퍼질 기미를 보이자, 국가는 나머지 국민들을 위해 화성시를 폐쇄한다는 방침을 내린다. 어떻게든 지옥 같은 도시에서 벗어나 살아남고자 했던 화성시의 시민들은 꼼짝없이 무시무시한 병이 떠다니는 도시에 남게 된 것이다. 나는 이 방침을 보고 그저 ‘잔인하다’라는 생각만 들었지만, 함께 책을 읽었던 친구들은 현실적으로 당연한 대책이며,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이해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은 정당한가?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한다면 그 희생되는 소수의 사람들의 강제적 희생은 어떻게 정당화 될 것이며,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인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반려동물은 인간과 동등한 존엄성을 지닐까’에 대한 의문이다. 앞서 말했듯, 소설 속 사람들은 전염병을 퍼트린 것으로 추정되는 개들의 무리를 향해 원색적인 분노를 드러낸다. 그들을 학살하고 생매장하는 잔인한 행동을 그 어떠한 죄책감 없이 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근본적인 의문이 싹텄다. 과연, 사람들의 이러한 행동은 정당한가? 병을 퍼뜨린 근원이 개들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만약, 최초의 보균자가 사람이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을 상대로 생매장과 학살을 자행하는 것은 범죄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인간과 동물의 존엄성은 동등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것이 21세기 사회에서 내리는, 동물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올바른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이처럼, 평범한 소설인듯 하지만 생각해볼만한 주제가 많은 작품이었다. 정유정 특유의 몰입감있는 전개가 좋았고, 참신한 소재 또한 좋았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작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