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들이 머문 시간은 언제나 밤이었다. 하루도 밝은 아침을 맞이한 적이 없었다. 현수의 시간은 세령을 세령호에 빠뜨렸던 그 날 밤에, 서원의 시간은 쌍둥이소나무에 묶여 세령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던 그 날 밤에, 승환의 시간은 세령호에서 죽은 세령과 눈이 마주쳤던 날과 영제의 계획으로부터 서원을 구해낸 날 밤 그 사이 어딘가에 멈춰있었다. 영제의 시간은? 오영제의 인생 자체가 빛 한 줄기 없는 깜깜한 밤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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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 우리 서원이, 잘 견뎠어."
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었다. 정상적으로 보여야 할 반응이 없었다. 울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최소한 흐느끼기라도 해야 했다. 뒤늦은 쇼크가 온 것처럼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 침묵했다. 승환은 갑갑했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 터트려야 했다. 그러지 못한다면, 서원은 홀로 견딘 공포와 고통을 영원히 끌어안게 될지도 몰랐다. 세령호는 서원의 우물이 될 터였다. 제 아빠의 것보다 더 어둡고, 깊고, 힘센 우물.
소설 속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겪는 일들과 느끼는 감정들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묘사를 통해서 한 명도 빠짐없이 각자의 아픔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폭행과 살인, 온갖 악행이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더 악하고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쉬이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들을 둘러고 있는 배경 중에서 나는 유독 그들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이 눈에 들어왔다. 은주가 엄마의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면 현수에게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었을까? 현수의 아버지가 존경할 만한 인물이었다면 폭력성을 되물림 받지 않았을까? 서원은 세령호라는 무서운 우물을 여전히 마음 속에 품고 있을까?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 엄마가 나에게 교대에 지원해보지 않겠느냐며 살며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교대에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투철한 사명감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원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 몇몇의 사소한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뚜렷하게 기억할만큼 청소년기는 한 사람의 자아형성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제, 은주, 현수가 그러했듯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주 전부터 멘토링을 시작한 보화가 떠올랐다. 처음엔 봉사시간을 채워야 해서 찾은 봉사활동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몇 번 과외를 해봤지만 가르치는 것에는 여전히 재능이 없다. 그러나 보화와의 첫 만남은 내가 어쩌면 보화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두 번째 만남 때는, 내가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리자 보화가 약을 사다주었다. 보화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세 번째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번에는 내가 보화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7년의 밤이 영화화 되어서 올해 안에 개봉한다고 들었는데 개봉하면 꼭 보려 가야겠다. 영제역을 장동건이 맡았던데 미스캐스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장동건의 배우로서의 면모를 오랜만에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류승룡, 송새벽의 연기는 두 말하면 입 아프고 서원역을 맡은 고경표의 연기도 기대가 되는 캐스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