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페미니즘 도서 중 가장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다가가기 쉬운 책 「82년생 김지영」. 사실 나는 페미니즘이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학문 또는 사회 운동이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것처럼 페미니즘 또한 그러하지만 그와 동시에 페미니즘은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여성들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부조리함, 성적 차별 등을 스스로 인지하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바꾸려 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시작이다. 「82년생 김지영」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여성들의 '보통'의 '대중적인'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김지영씨가 탄생할 때부터 그녀 자신의 아이를 돌보기까지의 삶은 대한민국 여성들이 살아가는 삶 그 자체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서글퍼진다. 김지영씨의 삶이, 나의 삶이 안타까워서.
「82년생 김지영」은 현재 기준 30대 중반 여성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굴곡지고 절정이 있는 소설의 전개와는 다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고, 또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부조리함을 잘 나타내주는 대목을 인용하여 글을 작성하고자 한다.
이제 여자니까 공부를 못하거나 덜 배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는 듯했다. …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면 '여자'라는 꼬리표가 슬그머니 튀어나와 시선을 가리고, 뻗은 손을 붙잡고, 발걸음을 돌려놓았다.
「82년생 김지영」 P72
이 문장은 김지영씨의 언니 김은영씨가 대학을 지원할 때, 교대를 지원하라는 어머니와 약간의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이 성차별과 부조리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몇몇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옛날에 비해서 많이 좋아졌잖아. 옛날에 비해 편하게 살고 있잖아." 우리는 옛날에 비해 여성 인권이 많이 좋아졌다고 해서 현재 양성평등이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확실히 할머니 세대 보다는 어머니 세대가, 또 어머니 세대보다는 우리 세대의 여성들이 더 높은 수준의 인권 의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용된 문장처럼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길이 가로막히는 경우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른 조건이 똑같음에도 기업은 여성보다 남성을 뽑으려 하고,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남녀 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기록한다. 청와대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해보니 합격자 6명 모두 여성이었다는 기사와 가스안전공사에서 여자는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의 효율이 좋지 않으니 점수를 조작하여 남성을 우선채용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기사가 같은 년도(2017년)에 나왔다는 것은 우리나라 여성의 인권이 아무리 '옛날보다' 좋아졌다 한들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는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느 날 문득 사무실을 둘러보았는데 부장급 이상으로는 여자가 거의 없더란다. … 선배는 여자를 자꾸 안 되게 만드니까 이러는 거라고 대답했다.
「82년생 김지영」 P98
얼마 전 친구와 여성차별에 대해 이야기 하다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같은 점수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남자만 뽑고, 또 같은 연차임에도 남자와 여자의 임금은 차이가 난다."라는 나의 말에 그 친구는 " 그 회사 일이 여자보다 남자한테 적합하니까 남자를 뽑은 거겠지. 남자들이 일을 더 잘하니까 여자들보다 돈을 더 많이 주는 거겠지."라고 대답했다. 계속 대화를 해봤자 그 친구를 납득시킬수 없을 것 같아 이야기를 그만 두었었다.
2018년 4월, 하나은행이 합격자의 성 비율을 정해 놓고 신입사원을 채용하였다는 기사가 났다. 하나은행의 면접관들은 은행 업무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성 비율을 남성에게 유리하게 적용하여 신입사원을 채용했던 것일까? '업무 강도가 높은 금융권의 특성' 때문에 남성을 더 많이 채용한다는 사실조차 여성혐오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갖는 '모성애'를 신성시하여 아이는 엄마 손에 길러져야 한다, 어머니의 모성애는 위대하다 등과 같이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던 여성이 출산 혹은 육아 때문에 퇴직을 하는 경우는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일과 동시에 육아를 하는 여성, 혹은 육아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 두고 일을 하는 여성에게는 '독한 여자'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 남성 사원들 혹은 임원들은 여성들이 출산 또는 육아 때문에 일을 일찍 그만두는 것을 보고 끈기가 없다고 비난하지만 그녀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육아 휴직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는 기업과 육아에 있어 남성보다 여성의 역할을 더 강조하는 사회 탓이다. 인용된 문장처럼 사회는 여자를 자꾸 안 되게 만든다. 애초에 여성들이 강인하게 일을 할 여건조차 마련해주지 않았으면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강인하게 일을 한다고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남성과 여성을 똑같은 비율로 채용한 적도 없으면서 업무 강도가 높은 일은 남성에게 더 적합하다고? 같은 환경, 조건을 마련하고 같은 비율로 남성과 여성을 채용한 후에나 그런 말 하기를 바란다.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82년생 김지영」 P132
사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성평등에 있어 급진적으로 매우 많은 진보를 이루어냈다. 3세대 안에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을 갖고 있는 세대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비혼,비출산을 외치고 있는 세대가 함께 있으니 말이다. 이전보다 남자 전업주부가 늘었고 엄마 뿐만 아니라 아빠의 육아휴직을 보장해주는 회사도 있다. 정말 좋게 말하여 위에 언급한 기업에서의 성차별도 줄어들었다고 한들, 우리 사회에는 인용문처럼 여성혐오적 문화, 습관들은 여전히 뿌리깊게 박혀있다. 군부대에는 '위문공연'이라는 명목 하에 여성들(심지어 중,고등학생들)이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군장병들 앞에서 춤을 추고, 몰래카메라는 전국 곳곳의 화장실에 설치되어 있으며, 여자 연예인을 성희롱, 품평하는 댓글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남자중/고등학교의 정식명칭에는 '남'고라는 수식이 붙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여자중/고등학교의 경우에는 무조건 '여'고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명절에는 시댁에 들린 후, 친정에 들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남자의 주민번호는 1/3, 여자의 주민번호는 2/4이며 남자 연예인들이 양복을 입을 때 여자 연예인들은 몸매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는다. 다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것들은 우리 사회에 많은 경우 남성이 여성보다 우선시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것들이 바뀌려면, 세상이 바뀌려면 의식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별 거 아니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일부러라도 바뀌고 행동해야 뿌리 깊은 여성혐오가 줄어들어 세상이 바뀔 것이다.
인터넷 맘카페에서 이 책을 읽고 펑펑 울었다는 한 아이 엄마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김지영씨처럼 회사를 다니다 임신 후 퇴직을 하였다는 그 작성자는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다들 그래왔다니까 힘들지만 꾹 참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김지영씨의 삶이 자기 자신의 삶과 같아서, 이렇게 살고 있는 자신이 불쌍해서 눈물이 나왔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사실 지금 대학생인 나는 대학교를 다니던 김지영씨의 인생까지는 완전히 공감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 취업과 육아에 관련된 내용에서는 100% 완벽하게 그녀의 삶에 녹아들 수 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이 곧 우리 엄마의 삶이고, 또 다른 여성들의 삶이기에 김지영씨가, 또 그 게시글의 작성자가 너무 안타까웠고 또 마음이 아팠다.
나의 부모님은 여전히 나에게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시며 치마가 너무 짧다고 지적하시고 걱정하신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밤늦게 길을 걸을 때 한적한 골목에 남자 그림자가 보이면 심장이 뛰며 불안해한다. 그 그림자의 주인이 나에게 특별한 해코지를 하지 않더라도 태어나고 자라나면서 수없이 많은 사례들을 목격해왔고, 또 경험해왔기 때문에 각인된 위험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얼마 전 친한 여자 선배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업을 하는 데 있어 경험했던 불합리한 일들을 얘기해 주며 눈믈을 흘렸다. 이렇게 수많은 나의, 주변 여성들의 삶의 모습은 김지영씨의 삶과 닮아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김지영씨의 삶을 통해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고통을 깨닫고 행동하여 김지영씨가, 그리고 우리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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