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중에 결혼을 안 할 거야. 내가 남자라면 결혼을 하겠지만, 여자는 결혼으로 얻는 이익이 없어.” 고등학교 때 우리 반 여자애가 한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 아이가 되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이해관계로 바라보다니. 나는 그 아이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나니 그 아이의 입장이 이해된다. 소설 속 주인공인 김지영을 통해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니 그 친구를 비난할 수 없었다. 정말로 여성은 결혼으로 너무나도 큰 차별을 겪으며 손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그 아이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다. 누군가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10대, 20대가 그럴 것이다. 10대나 20대는 성차별이 있다는 데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예전처럼 여자라고 학교에 보내지 않는 시기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게 학교생활을 한다. 그리고 취직은 여성이 오히려 빨리 한다. 남성은 2년 동안 군대에 다녀오기 때문이다. 어떤 남성들은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30대가 되면 여성의 삶은 남성의 삶과 완전히 달라진다. 육아 때문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많은 여성이 일을 그만두게 된다. 사회적 역할이 단절되는 것이다.
82년생 김지영도 그랬다. 김지영은 졸업 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지영은 자신이 좋아해서 다니던 직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김지영 뿐 아니라 우리 엄마도 그랬다. 우리 엄마 역시 결혼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여성에게 육아를 맡기는 문화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꿈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원하는 일을 진정으로 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할 수 없다.
김지영은 이런 상황 속에서 정신병을 앓게 된다. 계속되는 의무와 부담에 제 정신으로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작가는 김지영을 통해 현대 여성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정신병에 비유한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이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그저 현재 상황만 김지영의 삶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아픔을 공감한 후에는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봐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정답은 복지인 것 같다. 우리나라가 복지 국가가 되면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다. 현재 육아는 각 가정이 책임지고 있다. 만약 국가가 육아를 책임진다면 가정은 육아 부담을 덜 수 있다. 자연스럽게 여성도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노동 친화적 노동정책도 한 방법이다. 남녀 모두가 의무적으로 출산 휴가를 쓰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 기업은 남성 육아 휴직이 자유롭다는 광고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남성 육아휴직이 자유로운 기업들이 늘어나야 한다. 남자도 휴가를 떠나게 된다면 출산 휴가로 초래되는 남녀 성차별은 사라질 것이다.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모두 좋은 정책이다.
여성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은 비단 여자에게만 좋은 일은 아니다. 여성이 행복해지면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해진다. 여성의 인권을 높이는 과정에서 복지와 노동정책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가 행복한 사회가 진짜 행복한 나라이다. 불행한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99년생 김지영은 82년생 김지영과 다른 삶을 살기 바란다.